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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㊳ 스리랑카 폴론나루와 시대 불교와 동남아 전파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2/09/19 [08:08]
13세기 이후부터 캄보디아 불교는 스리랑카 상좌부 불교로 전향, 현재까지 존속

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㊳ 스리랑카 폴론나루와 시대 불교와 동남아 전파

13세기 이후부터 캄보디아 불교는 스리랑카 상좌부 불교로 전향, 현재까지 존속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2/09/19 [08:08]

13세기 이후부터 캄보디아 불교는 스리랑카 상좌부 불교로 전향, 현재까지 존속 

 

폴론나루와 왕국은 스리랑카 섬의 폴론나루와를 수도로 삼아 건국된 싱할라계 왕국으로, 1070년부터 1232년까지 스리랑카 섬과 다른 지역들을 지배하던 나라였다. 파라크라마바후 대왕의 치세 동안 폴론나루와 왕국은 해외로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폴론나루와 왕국은 판디아 내전에 간섭하여 남인도에 거점을 마련하였으며, 1165년부터 1180년까지는 미얀마에 원정군을 파견하였다. 또한 1165년에 상좌부 불교 전법사들을 동남아시아로 파견하여 상좌부 불교 전교 사업을 실시하였으며, 이는 동남아시아에서 대승 불교가 쇠퇴하고 상좌부 불교가 동남아시아의 주요 불교 종파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 스리랑카 폴론나루와 시대 불상.

 

그러나 왕국을 세울 때부터 불교가 강세이지 않았다. 아누라다뿌라가 남인도에 공격당하고 무너지자, 1070년에 비자야바후 1(1055~1110)가 섬을 완전히 탈환하여 폴론나루와 왕국을 세웠다. 당시 스리랑카 불교의 상태가 너무 나빠서 새로 승가에 들어오는 사미들에게 비구계를 줄 다섯 명의 비구 계사(戒師)를 구할 수 없을 정도였다. 왕은 버마에 대사를 파견하여 계를 줄 수 있는 비구들을 초청해 오도록 했다.

▲ 비자야바후 왕은 부처님의 치아를 봉안한 불치사(佛齒寺)를 세웠다.   

 

스리랑카 불교사에서 폴론나루와 시대에 불교 승가를 개혁하고 부흥시킨 왕은 파라크라마바후 1(1153~1186)였다. 남인도 촐라국 때문에 아누라다뿌라의 마하위하라(大寺派) 불교가 땅에 떨어졌다. 촐라 왕국은 힌두 왕국이었다. 이렇게 피폐화된 섬 불교를 하나로 통일 시켰다. 그렇지만 아누라다뿌라 시대의 불교는 분파가 심했고 어느 정도 승가가 타락했다는 연구도 있다.

 

파라크라마바후 1세는 1153년부터 1186년까지 폴론나루와 왕국을 통치한 라자()이다. 수도 폴론나루와에서 통치하는 동안 그는 섬의 세 개의 하위 왕국을 통일하였으며, 스리랑카 역사상 마지막 군주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수도의 확장과 미화를 감독하고, 광범위한 관개 시스템을 구축하고, 국가의 군대를 재조직하고, 불교 관습을 개혁하고, 예술을 장려하고 남인도 및 미얀마에서 군사 작전을 수행하였다.

▲ 파라크라마바후1세(1123년~1186년).     

 

"비에서 나오는 작은 물도 사람에게 유용하지 않은 채 바다로 흘러 들어 가서는 안 된다."는 속담은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말 중 하나이다.

 

파라크라마바후 왕의 인식은 승가가 분열되고 부패하며 개혁이 필요한 것으로 본 것이다. 특히 아바야기리(무외산사)의 상황을 좋지 않게 본 것이다. 쭐라왕사,小史에 따르면, 불교 수도원 공동체가 이 시기에 많은 갈등을 겪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 연대기는 또한 스리랑카 승가의 많은 승려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까지 했으며 승려보다 평신도처럼 행동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카사파 대장로가 머물렀던 딤불라갈라 라자 마하 비하라(사원).    

 

이 당시 가장 존경받고 경율(經律)에 능통한 대장로(大長老)는 카사파 비구였다. 승단을 정화하고 개혁하기 위해서는 대결단이 필요했다. 파라크라마바후 왕은 카사파에게 승단 정화 결정권을 주었다. 비리가 있는 일부 승려들은 평신도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다시 수계를 받고 승단에 합류할 수 있는 선택권을 카사파 대장로 비구에게 부여했던 것이다.

 

파라크라마바후 왕은 고대 도시인 아누라다뿌라와 폴론나루와를 재건하고 불교 사리탑과 비하라(수도원)를 복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왕은 또 상가라자(Sangharaja 僧王)를 임명해서 승가를 통할하고 왕사(王師) 역할을 하도록 했다.

 

10세기에서 13세기 사이의 기간에는 빨리어 문학의 구성이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이러한 문학적 노력의 배후에 있는 충동의 일부는 인도의 침략과 섬에 대한 다양한 전쟁이 불교의 쇠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개혁 시대의 빨리어 작가들은 부처님 가르침의 본질을 보호하는 작품을 쓰려고 했다.

▲ 보라색이 폴론나루와 왕국.   

 

이 시기에는 스리랑카 불교사에서 뛰어난 학승들이 활약했는데, 아누루다, 수망갈라, 시닷타, 사리푸타, 딤불라갈라의 마하카사파와 목갈나나 테라와 같은 고승들이다. 아누루다의 아바담맛타상가하(아비담마 길라잡이)와 같은 영향력 있는 마스터피스(傑作)가 출현하였다. 이 책은 아비담마와 위나야(율장)에 대한 주석이면서 강요서이다.

▲ 폴론나루와 왕국 때의 부처님 치아사리를 봉안한 장소. 

 

폴론나루와 왕국이 세워지기 전에는 이 지역은 남인도 촐라 왕국의 힌두교 영향을 크게 받고 있었다. 하지만 왕국 초기부터 다시 불교를 재건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상좌부 전통의 정통성을 수용하여 발 빠르게 회복한 것이다. 동시에 캄보디아 불교 승가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데, 크메르의 자야바르만 7(Jayavarman VII, 재위: 11811215)는 아들을 폴론나루와에 보내서 승려가 되도록 하였고 상좌부 전통의 정통성에 입각하여 삼장(三藏)을 몇 년간 배우고 크메르(캄보디아)로 돌아와서 앙코르 사원에서 상좌부 불교를 추진했다.

 

크메르 불교의 가장 중요한 왕인 자야바르만 7세는 불교를 앙코르의 국교로 확립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자야바르만 7세는 대승 불교도였으며 자신을 법왕이나 보살로 격상시켰다. 보살은 봉사와 공덕을 통해 "백성을 구하는" 의무를 지고 있다면서 자신을 보살로서의 군주로 위상을 높였다. 자야바르만은 고대 신들에 대한 그의 헌신을 철회하고 불교 전통과 더 공개적으로 동일시하기 시작했다. 그의 체제는 고대 힌두교의 과거와 분명한 구분선을 표시했다. 1200년 이전에 사원의 예술은 대부분 힌두교 판테온(신전)의 장면을 묘사했다. 1200년 이후에는 불교 장면이 표준 모티브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자야바르만 7세의 통치 기간 동안, 데바라자 신왕의 개념에서 승려의 개념인 승려의 개념으로의 이동이 있었다. 과거에는 엘리트 브라만 사제와 신왕을 위한 사원을 짓는 데 많은 노력과 자원이 투입되었다. 자야바르만 치하에서 이러한 자원은 도서관, 수도원 주거지, 공공사업 및 일반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보다 세속적인프로젝트를 건축하는 데 사용되었다.

▲ 앙코르 왓(사원)을 방문, 캄보디아 불교의 옛 영화를 상상하는 비구들이 사원 내부를 지나가고 있다.


캄보디아(크메르)의 불교는 적어도 5세기부터 존재했다. 초기의 불교형태는 대승불교의 한 유형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캄보디아 불교는 상좌부(Theravada)불교이다. 캄보디아 헌법에 국가의 공식 종교로 불교라고 명시되어 있다. 13세기 이후로 캄보디아의 국교는 크메르 루즈 시대를 제외하고는 테라와다(상좌부) 불교이다. 2013년 기준으로 인구의 97.9%가 불교도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캄보디아 불교의 역사는 여러 왕국과 제국에 걸쳐 있다. 불교는 두 가지 다른 흐름을 통해 캄보디아에 들어왔다. 초기 형태의 불교는 힌두교의 영향과 함께 힌두교 상인과 함께 푸난 왕국에 들어왔다. 후기 역사에서 캄보디아가 드와라와티(몬 왕국, 711세기)와 하리푼차이(몬 왕국 713세기) 왕국의 다양한 불교 전통을 흡수하면서 두 번째 불교의 흐름이 앙코르 제국 동안 크메르 문화에 들어왔다.

▲ 크메르 제국의 가장 위대한 왕 자야바르만 7세, 그는 불교도 왕으로서 앙코르 사원 옆에 바이욘 사원을 건축했다.     

 

크메르 역사의 처음 천 년 동안 캄보디아는 푸난의 자야바르만 1, 대승불교도였던 자야바르만 7, 수리야바르만 1세와 같은 불교 왕과 함께 일련의 힌두 왕이 통치했다. 힌두 왕과 이웃 몬 상좌부(테라와다 왕국)의 관대한 후원 아래 캄보디아 전역에 평화롭게 존재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낙산사에서 도반들과 함께 한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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