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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㊶ 식민지 시대의 캄보디아 불교와 현대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2/10/10 [07:34]
크메르 루주 불교 말살, 마하고사난다 고승 해외에서 활동

해양실크로드와 불교(종교)전파-㊶ 식민지 시대의 캄보디아 불교와 현대

크메르 루주 불교 말살, 마하고사난다 고승 해외에서 활동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2/10/10 [07:34]

크메르 루주 불교 말살, 마하고사난다 고승 해외에서 활동

 

불교는 16세기에도 캄보디아에서 계속 번성했다. 담마라자 왕의 친척인 앙찬 왕(15161566)은 독실한 불교도였다. 그는 수도에 탑을 세우고 캄보디아의 여러 지역에 많은 불교 법당을 지었다. 불교를 대중화하기 위해 바롬 리치 왕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사타 왕(15761549)16세기에 불교 사원이 된 앙코르 왓의 거대한 탑을 복원했다.

▲ 바이욘 사원의 관세음보살상.    

 

유럽의 영향력이 계속될 때마다 가톨릭 선교사들이 동행했지만 상좌부 불교는 크메르인을 개종시키려는 외국의 시도에 놀라울 정도로 저항했다. 식민기간 동안 주기적으로 천년왕국 반란을 포함하여 종교적 동기가 부여된 폭력의 발발로 평화가 깨졌다.

 

17세기, 18세기, 19세기 동안 캄보디아 정치에 대한 태국의 개입은 태국의 영향력을 종교 문제에도 확대했다. 노로돔 왕의 초대에 따라 태국 담마유티카 니까야(Dhammayuttika Nikaya, 개혁보수파)의 승려들은 캄보디아에 담마유티카 파의 승가를 설립했다. 새로 형성된 탐마윳 교단은 왕실 후원의 혜택을 받았지만, 기존의 마하니카이(마하 니카야, 온건 진보파) 법통과 자주 충돌했다. 탐마윳은 때때로 크메르 국가보다는 태국 궁정에 충성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 노로돔(1834년〜1904년)은 캄보디아의 국왕(재위 1860〜1904)이었다. 전 왕 앙 동의 아들로, 재위 4년째인 1864년부터 캄보디아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속국으로 전락하고, 그는 왕위를 보장받는 대신 실권 없는 군주로 전락하였다.    

 

프랑스 통치 시대에 불교 성직자들이 이끄는 폭력의 격변이 주기적으로 발발했다. 특히 캄보디아 불교는 승려들의 교육에 집중했고, 민족지성을 대변했다. 캄보디아 어린이들의 초등 교육은 계속해서 불교 사원 학교에서 이루어졌다. 승려들은 또한 지역 사회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였으며 사회를 지도하도록 권장되었다.

▲ 캄보디아 승가의 두 종정스님이 동석해 있다. 왼쪽은 텝 봉 마하니카이 파 종정이며 오른쪽은 부크 리 마윳파 종정이다.    

 

전통주의 대 모더니즘이 격돌하는 양상으로 사회가 요동쳤다. 게다가 캄보디아 왕가는 주기적으로 적대적인 친태파와 친베트남 파벌로 분열되어 국가의 통일 일관성을 더욱 약화시켰다. 그러나 캄보디아인들은 베트남인을 경계했다. 태국인은 크메르인과 같은 철자법, 미학 및 종교 전통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베트남인을 태국인보다 더 두려워했다. 베트남인은 중국식 세계관을 갖고 국가나 단체 경영에 있어서도 천재성을 발휘했다. 태국인과 크메르인이 보다 인도지향적이라고 한다면 베트남은 중국지향적이었다.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면서 캄보디아의 상황은 또 다른 국면을 맞게 된 것이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는 한 때 20만 명의 가톨릭 신자가 있었으나 현재는 2만 명 정도의 가톨릭 신자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소수의 부족 종교인도 있다. 캄보디아는 불과 30여 년 사이에 불교가 급성장했고, 정부 또한 정체(政體)실험을 통해서 혼란을 겪다가 지금은 입헌 군주국으로 전향하면서 불교를 더욱 장려하는 분위기다. 동남아시아의 상좌부 불교권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불교라고 필자는 진단하고 싶다. 이제는 인도나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 캄보디아 출신 비구들을 목격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만큼 캄보디아 불교가 안정되어 가고 있고 비구 승가의 숫자 또한 증가하고 있으며, 사원들도 신자들로 붐비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베트남에 가서 목격한 일이지만, 베트남의 상좌부 비구는 90%가 크메르 출신 국적이다. 베트남의 참족(Cham)15세기에, 남부 베트남의 캄보디아 지역은 18세기에 병탄했는데, 참족은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거주하는 말레이계 민족이다. 두 나라 외에 타이에도 약 4,00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참족은 이슬람 수니파에 속하는 무슬림이다. 참족은 베트남 남.동부 해안에 7세기에서 15세기까지 존속했던 참파 왕국의 후예이다. 

 

베트남은 18세기 남부 캄보디아 지역을 병합하고 자기들의 영토로 삼았는데, 이 지역에는 캄보디아 상좌부가 있는 지역이었다. 이들은 베트남의 대승불교로 전향하지 않고 상좌부 불교를 고수해서 1957년 베트남에서 상좌부 승가를 설립해서 상당한 교세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물밑 신경전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국적은 베트남이고 불교는 친 캄보디아인 상좌부 계통이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상좌부는 1981년 텝 봉 스님을 통합승가회 종정으로 선출했다. 담마윳 (Thommayut 보수)파와 마하니카이(Mohanikay 진보 대중)파의 분리를 통합한 것이다. 베트남군이 철수하고 1991년 불교를 국교로 선포하면서 시아누크 국왕이 귀국하여 1981년 베트남 정권하에 만들어진 단일 통합 승가를 각각 담마윳파와 마하니카이파를 복원하여 각각 우리 불교로 말하면 종정격인 상가라자(승왕) 제도를 두도록 했다.

▲ 캄보디아의 사미승들과 필자.  

 

킬링필드는 캄보디아의 불행한 역사였다. 1975년 공산주의자 크메르 루즈가 캄보디아를 장악했을 때, 그들은 불교를 완전히 근절하려고 시도했고 거의 불교를 멸망시켰다. 1979년 베트남 침공 당시 거의 모든 승려와 종교 지식인이 살해되거나 추방되었으며 거의 ​​모든 사원과 불교 사원 및 도서관이 파괴되었다.

 

불교에 대한 크메르 루즈 정책은 승려의 옷을 강제로 벗기고, 수도원을 파괴하고, 궁극적으로 비협조적인 승려를 처형하는 등 캄보디아의 불교 제도를 효과적으로 파괴했다. 도망치지 않고 처형을 피한 승려들은 평신도들 사이에 살면서 때로는 병자나 고통받는 자들을 위해 비밀리에 불교 의식을 수행했다.

 

크메르 루즈가 승리하기 전 캄보디아의 승려 수는 65,000~80,000명으로 추정되었다. 1980년대 초 불교가 복원될 때까지 전 세계적으로 캄보디아 승려의 수는 3,000명 미만으로 줄었다. 두 캄보디아 니카야(종단)의 종정은 197578년에 살해되거나 사망했지만 사망 원인은 알려져 있지 않다. 태국 군주국과의 관계로 인해 톰마윳 승가의 비구(승려)들은 특히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 캄보디아 밖에서 활동했던 마하고사난다 큰 스님(1929〜2007).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치적 망명가가 있는가 하면 종교적 망명 성직자도 있기 마련이다. 불교로 말하면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대표적이라고 하겠다. 달라이 라마는 너무나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세계불교계에는 달라이 라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캄보디아 현대사에서도 우리는 일종의 망명승려인 마하 고사난다 비구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마하 고사난다 큰 스님은 포스트 공산 캄보디아 시기에 매우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었는데, 그는 캄보디아 국가 재건과 캄보디아 불교 소생에 크게 기여하신 분으로, 1980년 유엔(UN) 망명 캄보디아 대표가 되었다. 1979년 폴 포트 정권이 무너졌을 때, 오직 3천 명의 비구만 살아있을 정도였는데, 3년 전인 19766만 명의 비구가 3천 명으로 줄어들었던 것이다. 마하 고사난다는 타이-캄보디아 국경에 절을 세우고, 타이 군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계를 주어 캄보디아 비구를 양성했다.

▲ 베트남에 있는 캄보디아 비구승가.    

 

캄보디아 승가는 현재 마하니카이파(대중파)와 탐마윳파(보수 전통)가 공존하면서 캄보디아 승가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것은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이 캄보디아로 귀국해서 국왕에 취임하면서 전통적인 두 개 파의 승가를 구성하도록 한 것이다. 크메르 루주 기간 캄보디아 불교 승가는 엉망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 기간 캄보디아 승가를 지켜 낸 분은 마하 고사난다 비구 큰 스님이시다. 마하 고사난다(Maha Ghosananda) 비구 큰 스님은 크메르 루주 기간과 공산주의 정부 후 과도기간에 해외에서 캄보디아 승가의 상가라자(종정)로서 캄보디아 불교를 이끌었던 분이다. 특히 마하 고사난다 종정 큰 스님은 해외에서 매년 캄보디아 평화행진을 진행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오늘날의 캄보디아 불교는 전적으로 상좌 불교 전통에 의한 13세기 실론(스리랑카) 불교 모습이라고 하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캄보디아의 불교는 인도불교의 원형성을 잘 보존해서 지켜 가고 있는 남방불교이지만, 힌두와 밀교적 성향이 어느 정도 개입되어 있다는 것은 숨길 수 없다.

 

앞에서도 이미 언급했지만, 크메르 루즈 기간 불교가 법난을 당하여 거의 아사직전이었지만, 캄보디아의 상좌부 전통은 금방 복원되었다.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불교 승가가 비슷한 색깔을 유지하는 것은 결국 실론 불교의 영향이 컸음을 다시 한번 상기하면서, 현재의 캄보디아 불교의 성장세는 매우 빠른 속도로 전진하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 밀양 표충사에서 스님들과 필자(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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