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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부의 ‘영혼학개론, 그 표준이론(49) 저승에 대해서

정영부 | 기사입력 2022/11/17 [07:41]
영에 대하여

정영부의 ‘영혼학개론, 그 표준이론(49) 저승에 대해서

영에 대하여

정영부 | 입력 : 2022/11/17 [07:41]

이번 회는 영혼학 그 표준이론의 제5()에 대하여저승에 대한 것이다. 5()에 대하여의 목차와 그중 이번 회에서 다룰 부분은 다음과 같다.

 

5. 영에 대하여

5.1. 영이란 무엇인가

5.2. 영 따로 혼 따로

5.3. 하느님의 영의 불(靈火)

5.4. 영의 의무

5.5. 저승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영혼의 중요한 속성 중 하나는 영속성(永續性), 즉 영생(永生)이다. 영혼이 영생한다면 사람은 몸이 죽어도 그 영은 계속 산다는 것인데 도대체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산다는 말인가. 우선 어디로 가서의 어디가 저승이다.

 

저승의 의미

 

저승이란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영혼이 가서 산다고 믿는 사후세계를 말한다. 이승의 반대말로 공간적으로는 이곳이 아니고 저곳이며, 시간적으로는 살아있는 때가 아니라 죽어 있는 때를 가리킨다. 후생(後生), 타계(他界), 명부(冥府), 음부(陰府), 명도(冥途), 명토(冥土), 황천(黃泉), 유계(幽界), 유명(幽冥)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표준이론에서 저승은 혼이 가는 혼계와 영이 가는 영계로 크게 나뉜다. 혼계는 다시 각혼 이하가 가는 생기계, 사람의 하급혼이 가는 중음계, 중급혼의 심령계, 고급혼의 준영계로 나뉘고 영계는 이제 막 열반의 경지에 오른 하급영이 가는 제1영계, 3단계 賢人급 이상의 자아들에 주로 깃드는 중급영의 제2영계, 해탈의 경지에 이른 고급영의 제3영계로 구분된다.

 

피안(彼岸)이란 불교리에서 사바세계 저쪽에 있는 깨달음의 세계로서 해탈한 존재가 가는 곳으로 출세간이나 법계, 무루계 등으로 표현하며 피안에 도달하는 것 또는 그 수행방법을 바라밀다라고 한다. 또 다른 종교나 철학에서는 강 저쪽 둔덕이라는 의미에서 이쪽 이승의 둔덕, 즉 차안(此岸)의 상대어로, 진리를 깨닫고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경지를 나타내는 말로도 쓴다. 어느 경우에는 일상적인 세속(世俗)으로부터 초월한다는 뜻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한다. 표준이론에서 열반은 번뇌의 불을 끄고 구원을 받아 하느님의 나라(영계)에 드는 것이니 제1영계에 드는 것을 의미하고, 해탈은 거기에서 다시 윤회를 멈추고 고급영이 되어 하느님과 합일을 준비하는 것이니 제3영계에 드는 것이다. 표준이론에서 불설의 피안은 번뇌가 소멸된 열반지경으로 제1영계부터이다.1)

 

불교는 36도를 일세계, 수미세계 등으로 부르며 이를 유정들의 윤회의 터전으로 보는 이승적 저승관을 가졌다. 불가에서 말하는 36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우선 욕계 6천은 이승인 수미세계의 일부로 수미산 중턱쯤에 있는 곳이다. 지옥 또한 욕계로서 수미세계의 일부이니 불설에 지옥은 저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미세계의 어디쯤인 이승에 있다. 그뿐만 아니라 색계 18천도, 무색계 4천도 모두 이승이다. 3계의 천()이 모두 천국이나 영계, 하느님의 나라, 피안(彼岸)이 아니라 생사유전(生死流轉)의 이승이다. 3계에 걸친 총 28에 하늘이 붙은 것은 이곳들이 수미산 꼭대기에서부터 수미산 위 하늘에 있는 곳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설의 이승들은 모두 이승적 저승으로 다른 사상에서라면 인간도를 뺀 5도와, 욕계6천을 포함한 28천이 모두 저승으로 이해된다. 특히 28천에서의 삶의 내용이나 그곳에 가는 존재들의 수준을 보면 이승이 아니라 표준이론의 혼계 중 심령계나 준영계 수준이다.

 

사실 이승에 있든 저승에 있든 윤회하기는 마찬가지이니 불교에서는 열반의 세계인 피안의 땅으로 건너가기 전 모든 곳을 이승으로 보는 것도 일리(一理) 있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곳들은 역시 저승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불설에서도 영적 수준이 수승하여 최상위 무색계의 천()에서 사는 존재들도 도피안을 위해서는 인간도에의 환생경험이 필수적이라 하니 다른 종교의 저승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

 

불교만큼 다양한 이승세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으나 윤회세계에는 지구 말고도 다른 천체(天體)가 또 있어 영혼은 둘 사이를 왕복하여 가며 환생한다는 생각도 있고2) 신지학처럼 이승인 물질계를 떠나면 에테르계, 아스트랄계, 멘탈계, 코잘계 그리고 영계 등의 여러 저승을 순서로 순례하며 산다는 저승관도 있으며, 여러 천체에 있는 저승을 윤회하며 점차 진화하여 최종적으로 파라다이스에 도달한다는 뉴에이지적 저승관도 있다.3)

 

저승관이 이처럼 다양하고 복잡하니 이참에 저승의 의미를 정리해 본다.

 

1) 불교에서처럼 저승이란 알고 보면 36도 내의 다른 이승일 뿐으로, 환생하기 전에 대기하는 플랫폼인 중음계만 저승이고 나머지는 다 윤회의 터전인 이승이라는 생각.

2) 사전의 풀이처럼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영혼이 간다고 믿는 사후세계는 모두 저승이라는 생각. 즉 이승의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은 모두 저승이니,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도를 제외한 욕계54)와 색계 무색계도 저승이고, 영을 인정하는 뭇 종교와 사상에서 말하는 영계 모두가 다 저승이다. 이는 일반적인 저승개념이다.

3) 영계, 즉 하느님의 나라를 제외한 사후세계가 모두 저승이라는 생각. 이 경우 우주는 이승과 저승 그리고 영계로 구분된다. 그렇다면 위 사전의 풀이는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믿는 사후세계, 즉 표준이론의 혼계로 수정하여야 한다. 어차피 영혼은 의 잘못 쓰임인 경우가 대부분이니 고쳐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표준이론에서는 위의 2)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영혼이 가는 사후세계는 모두 저승이다. 다만 혼이 가는 혼계와 영이 가는 영계로 구분한다. 따라서 불교의 천계(天界)는 표준이론에서 모두 저승의 일종(준영계)이다.

 

저승관의 종류5)

 

이미 살펴본 대로 저승에 대한 생각은 사상과 종교마다 크게 또는 조금씩 다르다. 이를 같은 종류별로 모아 대별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윤회의 저승관 : 명종 후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 천국이나 피안의 세계로 가지 않는 한 윤회한다는 저승관.

 

(1) 일반적 윤회 저승관

선한 영혼은 천국으로 가고 악한 영혼은 지옥으로 가는데 경우에 따라 어느 때에 인도환생(人道還生)하기도 한다. 저승은 종류가 다양하고 나름대로의 삶이 있는 곳이다. 윤회론을 낀 가장 간단한 저승관으로 우리나라의 무교적 저승관부터 도교의 저승관, 플라톤이 저승관까지 다 이런 유형이다.

(2) 불교적 저승관 : 저승인 中陰은 윤회의 플랫폼에 불과하고 중음에서 출세간하지 못한 영혼은 명종 후 수준에 맞는 이승으로 환생한다. 불교와 자이나교 그리고 그 원류인 힌두교의 저승관이다.

(3) 다층적 저승관 : 죽은 후 하위 저승부터 상위 저승을 두루 거치며 저승 삶을 살다가 천국으로 가지 못하면 다시 각 저승을 거쳐 물질계로 환생한다는 생각으로 오늘날 카발라의 존재의 46) 저승관과 신지학의 하위 3계와 상위 4계의 ‘7계 이론이 대표적이다. 오늘날 대부분 뉴에이지 저승관도 여기에 속해 있다.

(4) 영지주의적 저승관 : 신과 합일하지 못하면 영은 저승에 갔다가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한다. 이때 이승은 불교처럼 다양하지 않고 지구 하나뿐이다. 또 저승은 환생 아니면 합일의 플랫폼일 뿐이다. 혼은 어차피 생기체적인 감각과 본능이라고 보기 때문에 사람의 몸이 죽으면 같이 소멸한다.

(5) 표준이론적 저승관 : 명종 후 사람은 영과 혼으로 갈려 수준에 맞는 혼계7)와 영계로 갔다가 대부분 다시 환생한다는 생각으로 표준이론이 대표적이나 신지학과 유란시아서 등 영혼육을 주장하는 몇몇 사상에서 이와 유사한 생각을 찾아볼 수 있다. 불교 또한 오온에서 아뢰야식이 진화적으로 탄생하여 혼이 되어 윤회하며 혼이 열반하면 영인 아라한이 된다고 해석하고 나아가 아라한도 해탈에 이르기 전까지는 혼을 품은 몸으로 환생한다고 생각하면 표준이론적 저승관에 속한다.

 

2) 단생(單生)의 저승관 

(1) 기독교적 저승관 : 명종 후 영혼은 삶의 질에 상응하는 저승으로 가서 영원히 그곳에서 산다. 고대 이집트의 저승관, 조로아스터교와 그 영향을 받은 고대 유대교의 저승관, 그리고 기독교와 이슬람의 저승관이 여기에 속한다.

(2) 애니미즘적 저승관 : 죽으면 잠시 혼백이 흩어지지 않고 후손 주위에서 살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기나 정령이 되어 자연의 만물에 스며들거나 명계의 조상신과 합일한다는 원시적 저승관으로 성리학과 일본 神道註8)가 대표적이다. 이 저승관 중 환생관을 가진 경우는 1)(1) 일반적 윤회 저승관에 속한다.

(3) 다층적 저승관 : 죽은 후 자기 수준에 맞는 저승에 도달할 때까지 하위 저승부터 상위 저승을 두루 거친다는 생각으로 신지학적인 저승관에서 윤회론만 뺀 생각이다. 지중해의 성자 다스칼로스 류의 생각이다. 보통의 다층적 저승관은 윤회론을 동반한다.

 

3) 유란시아서의 저승관 : 지구에서 일정 수준의 의식수준에 달하면 육체를 벗고 지구가 아닌 또 다른 여러 이승들(맨션계 등)에 태어나서 살다가 최종적으로 천국(파라다이스)으로 가서 신과 합일한다는 저승관이다. 다만 유란시아서는 천국을 향한 혼의 여정이 기나긴 수면으로 중단될 수도 있다는 불합리를 포함하고 있다.

 

지옥적 저승관에 대하여

 

지옥 같다라는 말이 있다. 창조주 신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종교라면 대부분 지옥을 갖추고 있다. 마치 국가라면 감옥을 갖추어야 하듯 말이다. 그런데 왜 저승에 감옥이 있어야 할까? 그것도 지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비인간적이고 악랄하면서도 수감된 죄수들은 대부분 무기징역을 사는 감옥이 저승에 왜 필요할까?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이나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이런 곳이 왜 필요하셨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런 지옥은 없다. 지옥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든 곳이다. 사람이 사람을 겁주어 조종하고 복종시키기 위해 지어낸 허구(虛構). 이 가상현실이 만들어 낸 역사적 죄과(罪過)는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만일 지옥이 정말로 있다면 지옥은 이런 지옥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 가장 먼저 가야 할 곳이다. 대체 이런 지옥이야기는 누가 지어냈을까.

 

지옥은 인류 역사와 함께한다. 인간이 모여 살면서 그중 일부가 다수를 지배하기 위해 여러 장치를 개발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감옥과 지옥이다. 감옥은 백성의 현재를 지배하고 지옥은 백성의 미래를 지배하기 위한 장치다. 현재를 철저히 속박하기 위하여 미래까지 저당 잡은 꼴이다.

가장 먼저 문명이 수립된 중근동에서 맨 먼저 저승에 지옥이 설치되었다. 발생 시기가 설에 따라 기원전 17세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조로아스터교는 세계 종교 사상의 형성에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 이원론적 세계관,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 구세주 신화, 사후의 심판, 종말론, 죽은 자와 육체의 부활9), 몇몇 그노시스적 신화 등이 이 페르시아 종교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10) 조로아스터교의 지옥인 도르죠 데만은 정화(淨化)가 아닌 처벌(處罰)적 고문을 일삼는 곳이다.11) 여기에서 유래한 지옥적 저승으로서의 헬(Hell)이 바빌론 시절 유대교에 전해져 기독교에 심어졌고 다른 편으로는 인도로 전해져 힌두교를 오염시킨 후 교화방편이란 미명하에 더욱 악랄해진 형태로 변화되어 불교리12)에 실려 중국으로, 그리고 우리나라로 퍼졌다. 원래 모든 문명에는, 당연히 있었을 명계경험(근사체험)으로 인하여 저마다의 고유한 저승이 있었으나 중근동에서 발한 악마적 지옥은 다른 문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현대에 이르러 의학발달로 수많은 근사체험(近死體驗) 사례가 보고되면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 어느 사례에서도 지옥이란 찾아볼 수 없다.13) 그렇다면 소위 세계적 종교라는 기독교와 불교, 힌두교 등 거대종교가 공통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저 가학적(加虐的, sadistic)14) 지옥은 도대체 무엇인가. 진리를 앞세우는 종교들이 새빨간 거짓말인 공갈협박용 지옥을 수천 년간 운영하였다는 사실은 거대 종교 안에 얼마나 많은 또 다른 정치속과 장삿속이 서린 장치가 널려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이러한 공갈협박에 마음 졸인 채 지금도 두려움 속에 살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거대종교들은 한 손에는 부처님의 자비와 하느님의 사랑을 당근으로 들고 다른 손에는 지옥이라는 칼을 쥔 채 수천 년의 권력을 누리고 수천 조의 돈을 벌어 온 셈이다.

 

저승에 관해 가장 상세하게 묘사해 놓은 종교는 단연 불교다. 그것도 극락이나 28천이 아니라 지옥에 대해 가장 생생하게 묘사해 놓았다. 다른 종교도 이에 못지않다. 그들은 아직도 종교의 발전 과정에서 대중들을 교화하고 선행을 권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어쩔 수 없이 그리한 것이라고 변명할 것이다.15)

 

주요 종교와 사상의 저승관

 

공간과 시간상의 저승에 대해서는 세계의 모든 종교가 나름대로 독특한 설명을 하고 있다. 전술한 대로 중근동과 인도에서의 저승 묘사는 세계종교사상 가장 영향력이 크고, 설명도 체계적이다. 중근동의 고대 문명에서 발원한 저승과 명계(冥界)여행 및 하강(下降) 개념은 이후 기독교의 천당과 지옥으로 정형화되었다.

 

인도에서는 인도 토착의 세계관과 아리안족의 세계관이 결합하고 중근동발 저승관의 영향을 받으면서 힌두교와 불교의 극락과 저승관의 토대를 형성하였다.

 

동아시아에서는 불교가 유입되기 전까지는 천당과 지옥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중국의 黃泉이란 개념은 황하(黃河)의 황토층(黃土層)에서 비롯된 것으로 어두컴컴하고 쓸쓸한 곳을 의미하며, 죽은 사람이 가는 곳이지 특별하게 죄를 지은 자가 벌을 받아서 가는 곳은 아니었으며 우리의 민속 저승관도 마찬가지이고 일본 神道의 저승관16)도 이와 유사하다. 이러한 동아시아의 저승관을 계세적(繼世的) 저승관이라 한다. 이승의 삶이 저승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승에서 벌을 받는 양상도 이승에서의 죄과로 힘든 노동을 하며 가난하고 구차하게 지내는 것뿐이었다.

 

불교가 유입된 이후 동아시아의 저승은 주로 형벌을 받는 곳이 되었다. 험한 세상 제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죽어서 지옥을 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니 저승은 지옥의 이미지를 덮어쓴 꼴이 된 것이다. 따라서 죽음의 공포는 죽음의 과정이 주는 고통이나 소멸의 두려움보다는 저승에서 받을 무시무시한 형벌에 대한 공포심이 주가 되었다.17)

 

지옥은 각종 불교 경전18)에 팔대지옥 등으로 정밀하게 묘사되어 대중의 선행과 신앙을 권장하는 교화의 방편이란 미명하에 널리 보급되고 적극 활용되었다. 10세기 전후하여 도교 등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열시왕(十大王) 관념이 정형화되면서 관련 경전이 편찬되고, 각종 변상도19)나 회화가 그려져 보급되면서 대중적인 신앙이 되었고, 이는 우리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註釋> 

1) 이는 사바세계 저쪽에 있는 깨달음의 세계로서 넓은 의미의 피안이고 좁은 의미의 피안은 윤회를 멈추고 고급영이 되어 하느님과 합일을 준비하는 곳으로서 제3영계이다.

2) 프랑스의 사회학자 샤를 푸리에(1772~1837)는 명종 후 영혼은 근처의 다른 세상에 가서 살다가 다시 지구에 태어나는 왕복의 삶을 산다고 했다.

3) 영매가 자동서기로 다수의 지구 밖 생명체, 또는 고차의 존재, 천계의 거주자로부터 자동서기에 의해서 주어진 메시지를 정리하여 1955년에 출판되었다는 유란시아서에 나타나는 저승관이다.

4) 아귀와 축생은 인간도에도 산다고 한다. 구사론 등의 논서에 따르면, 축생(畜生)의 거주처는 욕계의 6도의 어디에나 존재한다. 아귀는 숲, 습지, 묘지 등 인간세계에 같이 산다고도 한다.

5) 저승관의 유형으로는 금생만 믿고 내생은 없다고 보는 단생관, 생사는 반복되며, 숨을 거둔 후에 다시 태어나기를 거듭한다는 불교적 생사윤회관, 죽은 후에 영혼이 심판을 받아 천국과 지옥으로 가게 된다는 영생관 등이 있다는 설명이 있다.(원불교대사전, 생사관) 그러나 위의 단생관에는 저승이 없으니 저승관의 유형이라고 할 수도 없다. 진화는 없다고 하는 것이 진화론의 일종은 아니다. 표준이론의 단생관은 윤회 없이 한 번만 살고 저승으로 간다는 주장을 가리킨다.

6) 1. 존재의 4계는 아래로부터 앗시아계, 예치라계, 브리아계, 아칠루트계이다.

2. 카발라의 저승관은 원래 윤회과정을 거쳐 원형인간으로 회귀하는 것이었으나 현대의 카발라(루리아닉 카발라)는 물질계 이후의 저승에 대한 주장이 신지학의 그것으로 많이 변질되었다.

3. 루리아닉 카발라의 저승관에서는 우선 수준이 낮은 영혼은 하위계에서 오래 머물면서 그곳의 고통을 겪으며 생전에 지은 죄를 씻어 영혼을 정화하고 다음 계로 가거나 윤회하게 된다고 하며, 살아생전에 네샤마나 히아 등 높은 수준의 영혼(또는 속성)이 자아를 지배하였다면 더욱더 높은 계로 신속히 가게 된다. 거기에 오래오래 살다가 앗시아계인 이승에 고급 영혼으로 다시 환생한다.

7) 표준이론에서 혼이 가는 3저승. 즉 중음계, 심령계, 준영계이다.

8) 신도(神道 Shinto)는 정령숭배에서 발전하였다. 신도는 만물에 서식한다고 믿어지는 초자연적 존재인 카미(kami)를 믿는 종교이다. 카미의 수는 800만이나 된다고 한다. 조상신은 이 카미에 속한다. 조상신이 카미에 편입된 것은 유교의 영향으로 보이며 우리나라에도 그 흔적이 있다. 오늘날의 神道는 영이 육신의 죽음에서 살아남아 가족 kami(조상신의 군혼)의 일부가 된다는 사상으로 발전하였다. 신도는 불교의 영향을 받아 불교리가 스며 있으나 환생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신사(神社)는 카미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서 세워진 시설로 야스쿠니신사는 일본이 벌인 주요 전쟁에서 숨진 246만여 전사자를 카미로 한 신사다.

9) 고대종교에 육체부활론이 발생한 이유

1. 고대인들은 당시 사람들 중 영이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또 하급혼이 많았기 때문에 영혼의 소멸 가능성을 직관하여 신의 은총 없이는 사람에게 영생하는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였고 이때 신의 은총부여절차가 심판이고 육체의 부활이었다.

2. 사람은 육체와 이에 생명력을 주는 생기체로만 구성된 것이라는 사고방식은 원시종교인 애니미즘의 발생의 직접적 동기다. 애니미즘의 애니마는 물질과 생명체에서 감지되는 생기(vitality)이거나 기껏해야 생기체(vital body)였기 때문에 영생(永生)의 속성이 애초부터 없었다. 따라서 당시의 종교가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영생은 육체의 부활밖에 없었다.

3. 고대근동역사학자인 줄리아 아산테는 에고의 자의식은 육신을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고 하며 에고는 육신의 감각이 전해 주는 정보에만 의지하는 자아로서 육신에 강한 동질감을 느끼고 육신의 죽으면 같이 소멸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영혼이 심판받아 부활하면 육체도 같이 부활한다고 믿었다고 주장한다.

10) 박중서, 인물세계사참조

11) 쿠사노 타쿠미, 천국의 세계, 박은희 옮김, 49

12) 팔리어로 된 부파불교의 경전인 맛지마 니까야데와두따 숫따(Devaduta Sutta)’에서는 니라야(奈落, Niraya)라는 이름으로 초창기 불교 세계관에서의 지옥에 대한 묘사를 확인할 수 있다.

13) 지옥의 실체

1. 최근 불교에서도 지옥도 자기 좋아서 간다는 신지학적 견해가 상당하다. 저 옛날 티벳 사자의 서에서도 벌써 지옥은 원래 환영에 불과한 곳이라고 하였으니 만시지탄이나 정상화 방향을 잡은 듯한 느낌도 든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의견이다. “어떻게 지옥과 같이 나쁜 곳에 대해서 애착하고 물들 수 있는 것인가? 마음이 뒤집혀(心倒)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지옥의 중유는 찬바람에 핍박받다가 타오르는 불길을 보면 따뜻한 감촉을 바라고 구하며 좋다고 착각하여 그곳에 몸을 던집니다. 또한 뜨거운 불길과 바람에 핍박받다가 찬 곳을 보면 시원한 감촉을 탐하여 그곳에 몸을 던집니다.”(네이버 참괴인 블로그참조)

2. 일찍이 스베덴보리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에 따르면 지옥은 악의 내적 상태이고 천국은 선의 내적 상태이다. 사자(死者)는 자신의 내적 본성과 일치하는 곳으로 찾아 들어간다. 모든 영은 죽음 이후에 같은 생각을 가진 집단에 합류한다. 그곳이 가장 편안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지옥은 악을 기뻐하는 영들에게는 행복의 장소로 여겨진다.(영문위키, ‘The New Church(Swedenborgian)’ 참조)

3. 신지학자 애니 베산트 역시 지옥은 하위저승인 아스트랄계를 묘사한 것이라고 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스트랄계에서는 인격이 형태로 드러난다. 악한 열정으로 가득한 사람은 그 악한 열정 전체가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짐승 같은 사람은 아스트랄체가 짐승의 형태를 띠며, 잔혹한 인간의 혼은 그에 걸맞은 불쾌한 인간 동물의 형태로 나타난다. 아스트랄계에서는 그 누구도 위선자가 될 수 없고 고결해 보이는 외피로 더러운 생각을 가질 수 없다. 인간의 본성이 어떻든 외부 형태와 겉모습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정신이 고결하면 아름다운 빛이 찬란하게 빛나고, 본성이 더러우면 소름끼치는 불쾌함으로 나타난다. 진실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진 부처와 같은 스승들이 이런 지옥의 모습을 끔찍한 비유를 동원해 생생한 언어로 묘사하였다.”(애니 베산트, 고대의 지혜3장 카말로카참조)

14) 오스트리아의 학자 빈델니트는 자이나교의 성전(聖典)에 있는 지옥의 종류에 관하여 새디스틱(sadistic)’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지옥의 이름만 들어도 사람들은 무섭고 놀라고 까무러칠 정도인 것이다.(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원형백과’, 우리저승세계)

15) 그나마 그렇게 변명한다면 다행이다. 오히려 그런 말 하면 너부터 가장 험한 지옥에 간다. 죽어 보면 안다. 그때 땅을 치고 후회하지 말고 지금 내 말을 들어라.”라고 공갈칠 것이 십중팔구 분명하다. 그렇게 대응하지 않으면 자기가 그 신세가 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자승자박의 지경까지 갔다.

16)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 등에서 사자(死者)가 당도하는 타계(他界), 요미노쿠니(黄泉国), 토코야미노쿠니(常闇国), 네노쿠니() 등의 암흑의 세계이며 더럽혀진 장소일 뿐 가학적 저승과는 거리가 멀다.

17) 미주62 ‘죽음의 공포에 대하여참조

18)

1. 여러 시왕경(十王經), 구사론 분별세품, 불설법집명수경(佛説法集名數經),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  

2. 왕생요집(往生要集)은 일본의 겐신(源信 942~1017)이 편찬한 불교서적으로 여러 경전에 나오는 왕생극락(往生極樂)’에 관한 글을 모아 엮은 책인데 이 책에 인용한 불경이나 논서는 무려 112617()이다.

19) 변상도(變相圖)는 불교 경전의 내용이나 교의를 알기 쉽게 상징적으로 표현한 종교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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