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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부의 ‘영혼학개론, 그 표준이론(50) 우리나라와 불교의 저승관

정영부 | 기사입력 2022/11/18 [09:15]
영(靈)에 대하여

정영부의 ‘영혼학개론, 그 표준이론(50) 우리나라와 불교의 저승관

영(靈)에 대하여

정영부 | 입력 : 2022/11/18 [09:15]

이번 회는 영혼학 그 표준이론의 제5()에 대하여우리나라와 불교의 저승관에 대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민속 저승관

 

한국인의 고유한 저승관은 전통적 巫敎(샤머니즘)에 불교와 도교의 여러 저승 관념을 수용하면서 발전해 왔다. 시베리아 샤머니즘에서의 이승과 저승의 교류 및 명계(冥界) 여행이라는 독특한 신앙이 고대로부터 민간신앙의 기저에 깔려 오늘까지 이어지는 한편, 저승에 극락과 지옥이 있다는 도교와 불교의 저승관이 도입되어 전통 무교와 섞이면서 한국의 토속 저승관이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한국종교는 다종교 공존의 특성을 지닌다. 더구나 도교와 불교의 것 외에 조선 후기에는 기독교의 천당지옥설이 이 땅에 들어왔고, 그밖에도 수많은 민족종교와 신흥종교가 조선 말 이래 생겨나고 유입된바, 이들도 나름의 저승관을 갖고 있기에 이 땅에서는 실로 다양한 저승이 신앙되어 왔다. 그 결과 현재 한국인의 저승관은 계세적(繼世的) 저승관, 무당이나 저승사자를 매개로 한 저승과의 交流, 불교의 轉生적 인간관, 유교의 애니미즘적 조상신관, 기독교의 천당지옥관 등이 섞여 매우 복합적인 경향이 있다. 한국인 전체의 의식과 잠재의식에는 이들이 층위를 이루거나 혼재하여 있고, 각자의 종교에 따라 어느 저승관이 주로 신앙되기도 한다.1) 특히 한국인의 저승관의 특징인 계세적 저승관은 이승적인 삶이 저승에서도 이어진다는 생각으로 저승과 이승이 공간적으로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고 다소 막연하고 불확실한데 대문 밖이 저승2)이라는 말에서 그 모습이 분명히 드러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말은 계세적 저승관을 넘어 지극히 현세적 저승관을 보여 준다. 저승이 아무리 좋아도, 또 이승의 삶이 아무리 고단해도 이승이 저승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여러 저승관을 가진 사람이 섞여 사는 정도가 아니라 각 개인에게 저승에 간 이후의 영혼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뚜렷한 관이 없을 정도로 현세적이다. 유교의 조상신 개념의 영향으로 죽으면 귀신으로 떠돌며 후손에 붙어 3~4대 제사상 받아먹다가 조상신에 합류할 것이라는 막연한 사후관도 가지고 있고 동시에 불교와 도교의 환생교리도 적당히 통한다.3)

그래서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종교가 서로 불편함이 없이 공존할 수 있는지 모른다. 유명 정치인이 죽으면 그의 종교와는 무관히 여러 종교에서 그를 위한 제사를 드린다. 후손들도 이를 말리지 않는다. 죽어서까지 힘의 과시가 되기 때문이다. 또 그것 중에 어느 하나 얻어걸리면 다행이고 여러 종교가 합심해서 밀어주면 저승에서도 그 빽이 통할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믿음도 작용한다. 심지어 신도(神道)적 애니미즘도 작용하여 죽은 정치인의 귀신에 예배하기도 한다.

 

불교의 저승-대승(大乘)의 저승

 

불교의 저승은 다른 종교와는 달리 36도 어느 곳에 살다 죽은 후 다음 생을 받기 위해 와서 환생을 기다리는 대기소일 뿐이다. 그래서 거기를 중음(中陰)’이라고 한다. 민속불전인 시왕경에 따르면 사람이 죽으면 중음의 세계로 가서 7일에서 49일 동안 갖은 경험을 겪고 다시 환생한다. 또한 저승에 십대왕이 있어 망자를 심판하여 환생할 곳을 정한다는 생각도 한다.4)

또 극락이니 정토5)니 하는 세계가 있으나 그곳도 알고 보면 피안(彼岸)이 아니라 차안(此岸)이다. 불교의 극락은 기독교의 천국과는 달리 저승이 아니라 이승의 세계인 것이다. 그곳은 우리가 사는 인간도(人間道)보다 좋은 윤회세상, 6도의 천상도(天上道)3계의 색계나 무색계의 천()처럼 부처나 보살이 살며 다스리는 이승의 낙토(樂土)로 저승이 아니다. 그러나 불교의 정통교리와는 상관없이 불교신자들은 보통 극락을 다른 종교의 천국쯤으로 생각한다.

 

색계 18천과 무색계 4처 그리고 표준이론

 

불교의 윤회세계인 36도 중 색계(色界 rupaloka)는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를 뜻한다.6) 다만 색계는 욕계(慾界 Kamaloka)의 물질보다 더 정묘한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이고 그곳의 유정들은 이러한 정묘한 물질7)로 이루어진 소의신(所依身, 신체)을 가지고 거주한다. 그러나 색계는 상당한 수준의 선정(禪定)을 닦은 사람이 가는 곳으로, 욕계에서와 같은 음욕, 식욕 등의 탐욕은 끊어졌으나, 아직 무색계와 같이 완전히 물질을 떠나 순수한 정신적인 세계에는 도달하지 못한 세계다.

무색계(無色界 arupaloka)는 물질을 초월한 순수한 정신적 영역의 세계로 오온(五蘊) 중 색()을 제외한 수(((()만으로 구성된 세계로 물질이나 욕망에 대한 생각이 없는 순수한 정신적 세계다.8) 이 무색계에는 네 가지 세계()가 있다고 한다.

1) 공무변처(空無邊處) : 허공은 무한하다고 체득한 경지.

2) 식무변처(識無邊處) : 마음의 작용은 무한하다고 체득한 경지.

3) 무소유처(無所有處) : 일체가 무소유임을 아는, 또는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체득한 경지.

4)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경지로 욕계·색계의 거친 생각은 없지만 미세한 생각이 없지 않은 경지.

불설의 색계와 무색계는 표준이론의 3.5단계의 혼이 갈만한 세상이다. 3.5단계의 자아의 주체는 확실히 이라고 할 수 있으며9) 따라서 영이 혼을 거의 극복한 수준이다. 보통 위인(偉人)으로 불리는 사람을 이 수준으로 볼 수 있다. 불교성인의 종류인 성문사과(聲聞四果)10)로 구분하면 사다함이나 아나함이다. 이기심에 의한 소유욕을 극복한 처가 無所有處라면 그 이전인 識無邊處는 자존심에 의한 명예욕을 극복한 처로 해석을 함도 적절하겠다.

표준이론에서는 3.5단계의 사람이 명종하면 준영계로 복귀하는데 복귀 시 그 혼의 수준에 따라 준영계 안에서의 단계가 정해진다. 말했다시피 준영계는 영계 직전 세계이며 준영계도 또한 여러 수준으로 구분될 수 있다. 불교에서는 그 단계를 욕계 6천과 색계 18, 그리고 무색계 4처 도합 28천으로 구분한다. 불설을 준영계의 단계에 대입시키면 준영계에는 무려 28단계가 있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11) 3단계의 혼은 준영계의 욕계6천으로 가고 3.5단계 이상은 색계 18천과 무색계 4처로 가는 것으로 보면 될까? 준영계에서 혼들은 각 단계 간 이동이 잦고 중간중간 인신난득(人身難得)으로 인간도에 환생을 다녀오며 그러다가 어느 단계에서 혼영이 되어 영계에 들게 되는 것이다. 표준이론에서 3단계 욕계6천에 속한 혼들은 한번 환생하여 인간도를 겪고 오면 10%의 확률로 열반하여 영이 되며12), 3.5단계 색계 18천과 무색계 4처에 속한 혼들은 인간도에 다녀오면 20%의 확률로 열반하여 도피안(到彼岸, 영계에 입성)하게 된다. 그러니 고급혼들도 서로 환생하려 애를 쓰게 된다.

28천 존재들은 100% 혼이다. 그 세계에서 영은 스승령일 뿐이다. 거기에 혼영일체의 존재는 없다.13) 그래서 불가에서도 인간도가 아니면 열반에 들 수 없다고 했다. 이들 세상은 자기의 업과 복대로 사는 세상으로 인간도로 환생하기 위하여 교육받는 곳이라고 보아도 좋다.

이처럼 어려운 환생의 기회를 잡은 혼들이 인간도에 와서 하릴없이 생을 낭비하고 준영계에 돌아간다면 그 얼마나 애절복통(哀切腹痛)할 일이냐.

 

티벳 사자의 서의 저승

 

티벳불교의 밀교전통14)에서 저술된 티벳 사자의 서는 티벳불교 밀교전통의 사후관을 잘 보여 준다. 동시에 저승여행 가이드격으로 저승여행을 성공적으로 하는 방법15)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인간도에서 어찌 산 것은 이미 벌어진 일이고 기왕에 가는 저승 요령껏 행동하여 좋은 곳에 왕생하거나 윤회에서 벗어나 보자는 내용의 책이다.

티벳불교의 사후관은 대승불교의 사후관과 유사하나 가장 중요한 대승의 지옥 픽션이 없다.16) 티벳불교도 대승과 경전이 대동소이하니 왜 그런 지옥이 없었겠는가만 밀교 성격이 강한 티벳불교에서는 실질적인 명계 경험이 경전의 虛構를 압도하여 별도의 경전인 바르도 퇴돌17)로 나타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아쉽다. 실질적인 명계 경험이 뒷받침되어 기술된 책이라면 어찌 중음계밖에 없는가. 따라서 사자의 서의 명계경험은 오늘날의 근사체험(NDR)이나 생간체험(LBL)이 아닌 유체이탈의 체험에 따라 기술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사자의 서를 보면 중음의 세계는 전혀 저승답지 않다. 스토리가 없고 콘텐츠가 빈약하다. 환생을 위한 대기장소에 불과한 것이다. 이름부터 중음(中陰, 바르도18))이 아닌가. 그래서인지 중음을 빛의 세계와 이승 간의 플랫폼으로만 기술하고 있다. 또한 사자의 서는 저승19)의 입구인 빛의 세계를 윤회를 그치는 해탈의 세계, 즉 영계로 묘사함으로써 중음계가 혼들의 저승인 혼계의 모든 것인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표준이론에서 볼 때 티벳 사자의 서의 중음은 유체이탈하여 겪은 체험을 저승의 모든 것으로 오인함에서 비롯한 것일 수 있다. 수승한 고승들이라면 분명히 의도적으로 유체이탈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체이탈하여 보는 저승은 오늘날 숱하게 보고되는 근사체험의 저승이 아니다. 유체이탈의 체험은 혼이 몸을 떠나 혼쭐이 끊어지기 전에 다시 몸으로 돌아오는 체험이니 주로 몸 주위에 서성이거나 기껏해야 빛의 터널 입구까지만 다녀오는 체험인 데 반하여, 근사체험은 혼쭐을 끊고 터널을 지나 흰빛 또는 그 너머까지 갔다가 돌아온 체험이다. 사자의 서를 쓴 티벳의 옛 고승들20)의 체험은 유체이탈이니 흰빛은 터널 너머 멀리서만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곳을 넘어가면 환생을 그치고 출세간한다고 생각하였다.

표준이론은 중음을 하급혼이 가는 저승의 이름으로 삼았지만 표준이론의 중음계의 실체는 불교와 전혀 다르다. 표준이론의 중음계는 빛의 건너편에 있는 진짜 저승으로서 사자의 서와는 달리 근사체험과 LBL의 저승처럼 전생을 반추하고 반성하며 차생을 준비하는 곳이다. 그 중음계는 혼의 업과 덕을 계량하는 심판소(審判所)와 이합집산을 위한 정비소(整備所), 그리고 환생을 위한 교육기관(敎育機關)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사자의 서에서 묘사하는 중음계는 망자를 위한 교육이나 환생계획이나 우정이나 사랑을 학습하는 중음계로서의 필수요소가 전혀 나타나고 있지 않다.

불교의 28천이나 극락도 명계경험의 소산이다. 이 역시 사자의 서와 마찬가지로 수승한 선각 고승들이 명상 등을 통해 혼뇌에 저장된 LBL을 기억해 찾아냈거나 전해들은 근사체험의 실질적인 경험을 교리에 반영된 것이다.21) 그러나 고승들은 LBL로 알아낸 28천이 저승이 아니라 36도 중 하나인 전생의 어떤 이승이라고 생각하였고 따라서 중음에 대한 견해를 수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사자의 서에는 정토도 28도 없다.

한편 티벳인들이 경험한 명계가 중음밖에 없었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28천 등의 천국이 없어서 기술 안 된 것이 아니라 사자의 서에만 없을 뿐이라고 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 전술한 대로 28천은 저승이 아니라 어떤 이승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중음에서 49일 이전에 빛의 세계로 들어서면 그곳은 출세간의 법계가 아니라 36도의 천계로 환생하는 통로다. 49일 이내에 빛의 터널을 지나 천계로 환생하지 않으면 다시 인간도로 환생하는 것이다.

2) 사자의 서는 환생요령서이지 저승의 구조를 가르치기 위한 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사한 종류인 15세기 유럽의 기독교 임종 안내서인 아르스 모르앤디22)나 신화적인 내용의 이집트 사자의 서또한 저술된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콘텐츠가 사자의 서와 사뭇 다르다.

3) 당시 티벳 중생들이 대부분 하급혼이었기 때문에 LBL에 대한 정보는 하급이 다녀온 중음의 세계에 국한되었을 것이다.

4) 무지몽매한 중생을 교화할 목적으로 쓰인 인 사자의 서는 당연히 그들이 갈 중음에 대한 내용만 기술되었다.

5) 불교의 교리상 저승이란 환생대기소여야 하기 때문에 이에 어긋나는 저승에 대한 정보는 배척되었을 것이다. 28천이나 다른 36도를 저승으로 묘사하면 힌두교의 수많은 저승과 같은 교리를 갖게 되어 차별이 없어지니 더욱 이를 기피하였을 수도 있다.

6) 또한 환생의 기억은 원래 대부분 영이 아니라 혼의 기억이기 때문에 혼의 저승인 혼계에 대한 정보만 있었을 것이다.

7) LBL에 대한 충실한 정보는 퇴행최면이 발달한 최근에야 알려지기 시작하였다.23) 

 

 

<註釋>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문화원형백과 우리저승세계 등 참조

2) 한국인의 저승인 本鄕꽃밭은 오늘날 근사체험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꽃밭개념과 유사하다. 다만 우리 고유의 본향꽃밭은 대문과 이어진 뒷동산에 바로 펼쳐져 있다. 한국인은 죽어 본향의 산(先山)에 묻힌다. 한국인의 저승은 결국 뒷동산의 본향꽃밭이고 그 본향꽃밭에서 다시 살아날 것을 믿는다.

3) 우리나라 대부분의 불교신자에게 환생교리는 기면 기고 아니면 그만인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정도에 불과하다. 계세적이고 현세적 종교관과 잘못 이해한 무아의 교리, 그리고 여러 저승관을 섞어 가진 결과다.

4)

1. 시왕경(十王經)은 중국 및 일본에서 만들어진 민속불전의 하나로 여러 이본(異本)이 있다. 사후 중음(中陰) 기간 중에 망자가 태광왕, 초강왕, 송제왕 등 10명의 왕 앞에서 생전의 죄업을 재판받는 절차를 언급하고, 지장보살의 구원을 말한다. 또 중음의 기간 중 유족의 추선공양을 권장하며 기간은 49일 이내이나 백 일, 일 주기, 삼 주기로 연장될 수 있다. 중세의 중국에서 유행한 도교의 태산(泰山)신앙이나 명부(冥府)신앙을 불교 측에서 수용한 것이다.(종교학대사전, 시왕경 참조)

2. 시왕경은 도교의 영향을 받아 작성된 티벳 사자의 서의 중국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자의 서와는 달리 다양하고 무시무시한 수많은 지옥이 환상이 아닌 실제의 세계로 敎說되어 중화권 중생들의 정신세계를 겁박하여 왔다.

5) 불교의 극락

1. 정토(극락)사상은 육도삼계의 구성과는 기원이 다른 것이지만, 대중 교화의 방편상 극락-지옥의 체제로 정형화되었다. 극락은 안양(安養), 안락(安樂),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 등으로도 불린다. 극락은 예토(穢土)인 사바세계에서 서쪽으로 십만억 불토(佛土)를 지나서 있다는 정토(淨土)이다. 모든 일이 원만구족(圓滿具足)하여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이 없는 자유롭고 안락한 이상향으로 믿어진다. 불교의 정토는 아미타불의 극락정토 외에도 아축불(阿閦佛)의 동방정토로서의 묘희(妙喜)세계, 약사불의 유리광(瑠璃光)정토, 미륵보살의 도솔(兜率)정토, 도사경(兜沙經)에 설한 시방(十方)정토, 관음의 보타락(補陀落)정토, 유마경(維摩經)의 유심(唯心)정토, 화엄정토 등등 많다.(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러한 다양하고 수많은 극락들은 저승이 구조로 되어 있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천국을 이해하는 자기만의 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2. 이러한 정토들은 불교리상 별개의 불국토로서 예토인 이승이 아닌 피안(천국)으로 상정된 것이고 우리 불토에서 십만억 佛土만큼 떨어져 있다하여 마치 법계나 피안의 세계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대승에서는 영과 영의 세계인 천국을 인정하지 않으니 이곳들은 모두 색계나 무색계의 천계 어디쯤에 속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밖에 없다. 또한

1) 극락세계에 상품상생으로 왕생하면 곧 수행계위인 10(十地) 중 제8지 부동지(不動地)에 태어난다고 하는 교설이나

2) 아미타불의 48개 서원 중 일부를 보면

(1) 내 불국토에는 지옥 아귀 축생 등 삼악도의 불행이 없을 것.

(2) 내 불국토에 태어나는 중생들은 다시는 삼악도에 떨어질 염려가 없을 것.

(3) 내 불국토에는 수없는 성문 수행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나올 것.

(4) 내 불국토에 와서 태어나는 중생들은 목숨이 한량없을 것.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미타불의 불국토인 극락은 적어도 해탈하여 부처가 되어 가는 피안의 세계는 아니다. 극락이 기독교의 천국 같은 곳이 되어 버린 마당에 그곳이 사바세계냐 피안의 세계냐가 왜 중하냐고 하겠지만 그렇다면 불교가 스스로 남다르다고 주장하는 과학성(科學性)이라는 게 다 무엇이 되는가.

3. 그럼 진정한 불교의 극락, 즉 피안의 세계는 어떤 곳일까? 불교에서 그곳은 육도(六道)의 어느 한 곳이 아니다. 우주 전체에 遍在한 곳으로 나툼과 감춤이 자유로운 곳이며 一元이지만 개별성을 갖춘 곳으로 생각된다.

6) 불교에서 물질은 변하고 허물어지는 성질(변괴성, 變壞性)과 공간을 점유하고 있을 때 동일 유형의 다른 사물이 그 공간을 점유하는 것을 장애하는 성질(對礙性, 대애성)을 가진 사물이라고 정의된다.

7) 신지학 등 대부분의 뉴에이지에서는 불교의 중음계에 해당하는 저승을 아스트랄계라고 하는데 이곳은 에테르()의 보다 정묘한 채로 이루어진 세계라 하니 불교와 신지학은 그런 면에서 서로 일치한다.

8)

1. 불교의 무색계는 형이상학적 세계이므로 보다는 이라 하여 따로 국토(國土)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승의 일부라는 점과 수미세계의 구조상 최소한 遍在하는 정도의 개념은 있어야 할 것이다.

2. 신지학에서는 멘탈계 또는 데바찬계라고 하는 저승이 물질을 자유로이 부리는 곳이라 하니 무색계처럼 색을 초월한 곳이다.

9) 3.5단계에서 자아의 방의 점유율은 혼:=4:6이며 혼의 정신체:양심체=4:6이다.

10) 4.3.9.3.2.2. ‘불교의 성인단계인 성문사과(聲聞四果)’ 참조

11) 표준이론에서는 정상적인 경로(완행코스)를 통하여 3단계 혼이 3.5단계가 되는데 무려 100생이 소요되고 다시 4단계 혼이 되는데 100생이 소요된다. 그러니 그들의 저승인 준영계가 혼의 수준에 따라 그처럼 많은 층위로 구분됨은 당연할 수도 있다.

12) 이는 소위 직행코스다.

13) 영은 28천에 환생하지 않는다. 거기는 혼들만 있다. 영의 환생(부임)목표 중 하나가 혼의 교화이지만 저승까지 가지는 않는다. 28천은 표준이론에서 고급혼이 가는 저승이다.

14) 티벳불교

티벳불교(라마교)는 인도의 대승불교가 7세기 초 토번(吐藩)왕조에 의해 티벳에 도입되면서 당시 토착 애니미즘 종교인 본교(本敎, Bon religion)와 타합하면서 성립되었다. 티벳불교는 그 정착 초기에 본교와 인도의 샥티(性力)신앙의 영향을 받아 남녀 간의 성행위에서 오는 오르가슴을 무아(無我)의 경지라며 숭상하는 소위 탄트라 불교로 전락하였다. ‘탄트라는 원래 인도에서 기원하여, 오랜 연원을 갖는 비의적 수행법 모두를 뜻하였으나 그 수행법 중 샥티적 부분이 타락하여 초기 티벳불교에 도입되면서 지금의 부정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후 이를 개혁하려는 많은 시도 끝에 총카파(Tsongkhapa 1357~1419)에 의해 정통 대승불교 교파인 황모파의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티벳불교에는 아직도 탄트라적 요소가 근절되었다고 할 수 없다. 한편 티벳불교는 이러한 태생 때문인지 신비주의적인 면이 강하여 밀교(密敎)라고도 불리는데 우선 영매(무당)의 역할이 공공연하여 일상생활의 문제들이 무당에 의지해 결정된다. 티벳불교 황모파의 수장이자 정치적 수장인 법왕(法王) 달라이라마 또한 티벳 신관(神官)들 중 가장 중요한 신관인 네충쿠텐이라는 영매 승려에게 국가대사의 자문을 받는데 네충쿠텐의 몸주신인 네충(Nechung)은 도르제 드라크덴(Dorje Drak-den)이라는 혼(*)이며 티벳 망명정부와 달라이라마의 수호신이다. 달라이 라마 자신도 중생제도를 위해 다시 태어난 고급혼인 활불(活佛, 툴쿠)이니 밀교적 요소가 없다고 할 수 없다. 티벳불교는 이러한 밀교적 요소 때문에 오늘날 뉴에이지 종교와 여러 신진 사상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 미주121리사 윌리엄스의 영혼론의 문제점에서 살펴본 대로 영매 리사의 몸주신은 지박령 등 유령이 아니라 수준이 낮은 혼계의 스승령인 영()일 가능성이 있다. 도르제 드라크덴도 같은 경우로 보인다. 케이스가 많으면 사실이 된다.

15) 티벳 사자의 서와 신지학

1. 사자의 서에 의하면 사람은 사후에 3부로 나뉜 경험을 겪게 되는데 제1부는 치카이 바르도로 죽음의 순간에 일어나는 경험이다. 2부는 초에니 바르도이며, 3시드파 바르도는 환생을 갈구하는 死者의 본능과 인간도(人間道)로의 환생 직전에 일어나는 경험들이다.

2. 혼이 거치는 바르도의 세계를 보면

1) 사후세계에서 가장 높은 차원의 체험은 1부 치카이 바르도로 최초의 순간이다. 죽은 후 짧게는 손가락 튕기는 시간에서부터 보통 30분간의 시간이며 법력이 높은 이는 3~4일 걸리기도 한다.

2) 그다음 초에니 바르도는 많은 빛들과 신들을 보고 카르마의 환영을 겪는 단계로서 14일간이다. 여기에서 빛과 신들에게 돌아가지 못하면 사지가 찢기고 심장이 꺼내져 내동댕이쳐지며 머리가 산산이 부서지는 공포의 환영들을 겪게 된다. 이것이 곧 지옥의 경험이다.

3) 초에니 바르도에서 빛으로 탈출하지 못하면 3단계 시드파 바르도로 가서 환생을 하게 된다. 마지막 3단계까지 밀려온 사자를 위해 사자의 서는 자궁(子宮)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방법을 설명한다. ‘자궁문을 닫는 방법들을 설명해 주는 것이다.

4) 사자의 서는 각 단계마다 탈출을 위해 어떤 빛을 따르고 어떤 빛은 피하여야 한다고 조언하는데 환한 빛일수록 좋은 빛이라고 한다.

3. 이러한 단계는 49일간에 걸쳐 일어나는데 1부나 2부에서 끝나 원천(천계)으로 회귀(환생)하는 사람들도 있고 3부까지 가서 인간도로의 환생직전에 탈출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꼭 49일은 아니다.

4. 사자의 서는 우리가 사후에 보게 되는 그 모든 빛들과 신들의 세계가 사실은 우리 자신의 마음에서 투영된 환영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실체가 없는 환상이라는 것이다. 사실 삶의 세계도 내가 창조하는 것이고 나의 환영이니까 그런 의미에서라면 맞는 말이다. 그들은 사자의 귀에 대고 죽음은 환영에 불과한 것이며 삶까지도 그림자일 뿐이니 서둘러 그것들에서 벗어나라고 말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5. 이러한 사자의 서의 내용은

1) 하급혼들의 저승인 표준이론의 중음계(신지학의 아스트랄계) 상황을 설명하는 것일 수 있다.

그 이유는 표준이론의 중음계는 하급혼들이 가는 저승으로 환생을 위한 최소한의 재교육과 환생계획을 수립하는 곳인데 사자의 서의 중음 또한 환생의 플랫폼 정도로 보이므로 그곳이 혼들의 저승(혼계)라면 마땅히 표준이론의 중음계에 해당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2) 혼계 즉 저승에 들기 전의 상황을 묘사한 것일 수 있다.

사자의 서에서 묘사하는 밝은 빛이 망자가 사후 저승에 들어가기 전에 거치는 터널과 터널을 지나서 만나는 밝은 빛의 존재를 의미한다면 사자의 서의 중음은 아직 저승이 아니라 저승의 문 밖이다. 그렇다면 사자의 서의 중음은 근사체험을 한 이가 밝은 빛을 만나기 전 단계의 경험에 이런저런 지옥의 신화를 가미하여 꾸민 소설이 된다. 불교로 보면 밝은 빛의 세계는 36도의 28천으로 환생하는 길일 수도 있다.

6. 한편 사자의 서의 중음은 명종 직후 아스트랄계에 들어가기 전 영혼이 당면하는 상황을 묘사한 신지학의 다음 설명과 많이 닮아있다. 이를 보면 사자의 서의 중음은 저승이 아니라 저승의 문 밖이 아닐까 한다. “인간이 죽으면 그의 에테르체는 육체로부터 분리되며 몇 시간 이내 아스트랄체가 에테르체로부터 떨어져 나오고 그때부터 아스트랄계의 삶이 시작된다. 정상적인 경우 아스트랄체가 에테르체로부터 떨어져 나올 때까지 그는 무의식 상태에 있게 된다. 그리고 그가 새로운 삶을 자각했을 때 그곳이 바로 아스트랄계이다. 그러나 물질적 존재 상태에 결사적으로 매달리는 사자(死者)들도 있는데 이 경우 그들의 아스트랄체는 에테르체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따라서 그들은 에텔 질료에 둘러싸인 채 깨어나게 된다. 때로는 잠시 동안 눈에 익은 지상의 사물을 흐릿하게 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대개 강한 상념적 이미지와 우연히 조우함으로써 생기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렇게 안개가 걷히는 경우는 드물며 그렇기 때문에 다시 문이 닫힐 때 그 어둠은 한층 더 그를 절망케 할 뿐이다. 시종 그 불쌍한 혼은, 만일 자신이 물질에 대한 광적인 집착만 놓아 버린다면 그 즉시 일상적인 아스트랄계의 삶 속으로 빠져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를 더욱 괴롭히는 것은 심지어 지금 자신이 갖고 있는 이 비참한 절반의 의식마저 상실될지 모른다는 느낌, 감정 그 자체이다. 따라서 그는 의식의 완전한 소멸, 무의 바다에 빠지느니 차라리 안개로 가득 찬 이 무시무시한 잿빛 세계에 매달리는 쪽을 택한다. 때로는 이승에서의 무지한 종교적 가르침을 상기하고는 자신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어느 경우든 대개 그는 엄청난 고통, 절망, 고독감에 시달린다.” (리즈비터, 신지학대의동물빙의참조)

7. 그러나 어쨌든 사자의 서의 중음은 최소한 환생의 플랫폼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니 일단은 표준이론의 중음계와 매치시키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16) 물론 혼이 자초한 환상을 통해 지옥을 경험한다. 환상으로 겪는 지옥의 고통도 대단하다. 악몽보다 훨씬 더 심한 정도로 상상된다.

17) 바르도 퇴돌은 티벳불교 닝마파의 경전으로 8세기 티벳불교의 대가 파드마삼바바가 티벳 산중에서 쓴 108개의 경전 중 하나로 후세 제자들이 찾아내어 남겼다는 전설의 경전이다. 1927년 티벳 학승 라마 카지 다와삼둡이 영역하고, 영국의 종교학자 에반스 웬츠가 편집해 옥스퍼드대학교에서 Tibetan Book of the Dead라는 타이틀로 영역되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티벳 사자의 서는 일본에서 번역될 당시 사용된 書名이다.

18) ‘바르도둘 사이란 뜻으로 사람이 죽어서 다시 환생할 때까지의 중간 사이를 말한다. ‘퇴돌이란 듣는 것을 통한 영원한 해탈이라는 뜻이다.(두산백과, 티벳 사자의 서 참조) 바르도 퇴돌을 직역하면 중음탈출기정도다.

19) 혼이 가는 저승은 혼계라고 하며 아래서부터 차례로 중음계(아스트랄계), 심령계(멘탈계), 준영계(코잘계)이다. 영이 가는 저승인 영계에 대한 기록은 스베덴보리의 증언 외에는 신뢰성 있는 자료가 현시대에도 드문 형편이다. 그의 증언도 혼계와 영계를 모두 영계로 파악한 한계가 있다.

20) 고승들이 본 저승의 끝은 사실은 저승의 시작이었고 49일간의 저승담은 직접 경험하지 못한 근사체험담이나 자신들의 희미한 LBL의 기억을 교리에 맞게 각색한 것이다. 저자가 파드마삼바바라고 하나 많은 경전들이 그러하듯 닝마파 고승들의 저작임이 분명하다.

21) 사후세계에 대한 각 종교의 경전 내용은 어떤 식의 경험이었든 이후 수천 년 동안 재경험되며 검증되고 확인된 내용들이다. 개인이 다르고 시대가 약간씩 다를 뿐이지 터무니없는 내용은 그 오랜 세월을 살아남기 힘들다. 다만 지옥적 저승관처럼 정치적이고 교회조직 목적에 의하여 각색되고 과장된 천국과 지옥 이야기는 세월이 갈수록 악용되어 거짓이 더욱 커졌다.

22) 15세기의 서구사회에 보급된 소책자로, 라틴어로 사망술 또는 왕생술이라는 뜻이다. 14세기 페스트 대유행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죽는 방법에 대한 안내서가 필요하여 이런 소책자가 유행했다. 임종 시에 천사와 악마가 육체를 떠나려고 하는 영혼을 둘러싸고 싸우는 상황을 묘사하고, 그리스도 교도로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 임종에 어떻게 임하면 좋을 것인가에 대해 적었다.

23) 혼들의 세계는 심령계와 준영계의 경험들을 중심으로 영혼들의 여행(마이클 뉴턴) 등 퇴행최면에 관한 저작들에 의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책에 나타나는 영들의 세계인 영계(靈界)에 대한 LBL은 그 내용이 지극히 의심스럽다.(11.3.3. ‘영과 혼이 각각 윤회하는 표준이론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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