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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여자들 [박현선 에세이]~재춘이 아재

박현선 | 기사입력 2023/03/27 [11:12]
제2부 고즈넉이 쌓여있는 그리움

4. 재춘이 아재

꿈꾸는 여자들 [박현선 에세이]~재춘이 아재

제2부 고즈넉이 쌓여있는 그리움

4. 재춘이 아재

박현선 | 입력 : 2023/03/27 [11:12]

  © CRS NEWS


북한 원산보다 따뜻한 춘천이 좋겠다고 여긴 할아버지는 식솔들을 데리고 춘천 신북읍 발산리로 내려왔다. 웃음, 놀이 그리고 단잠이 가득했던 아버지의 유년 시절, 그때 만난 재춘이 아재는 아버지의 깨복쟁이친구이다.

 

학교가 이십 리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걸어서 집에 돌아오면 소를 몰고 들로 나갔다베는 시간보다 장난하는 시간이 많다군것질거리로 산새들의 집을 찾아다녔다. 둥지를 발견하면 알을 끄집어냈다. 집에 가서 삶아 먹기 위해서다.

 

소의 고삐를 풀어 제멋대로 풀을 먹게 놓아둔다. 옷을 벗어 던져 놓고 개울에 들어가 헤엄치기를 시간 하다보면 따갑던 여름해도 서서히 기운다등을 타고 개선장군처럼 워어, ~ .” 소를 몰아대며 마을로 들어왔던 기억은 두 아이의 공동(?)추억거리가 되었다.

 

재춘이 아재는 나중에 춘천에서 경찰 공무원으로 35여 년 근무를 이어오다 파출소장으로 정년퇴직을 했다. 아버지는 결혼 후 그 곳을 떠나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말년에 고향으로 귀농하셨다. 재춘이 아재는 여전히 의리 있고 다정다감한 아버지와 끈끈한 친구 로 지내신다. 아버지는 강해 보이지만 어려운 사람에 대한 한없는 배려 때문에 마음을 상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신의 없는 사람들 때문에 고생하는것을 보게 때는 아버지 친구로서 가슴이 아팠다고 회상하신다.

 

붉은기와집 정문에는 송석헌(松石軒) 현판이 붙어 있다. 정자 부근에 80년생 소나무 30그루가 심겨 있다. 재춘이 아재는 정원을 증축하고 정자를 세웠고, 나무크는 모습에 푹 빠져 살고 있었다. 못에는 노랑어리연꽃이 피어 있다. 주변에는 소나무, 회양목, 단풍 나무, 엄나무, 주목이 심어져 신선한 공기를 뿜어낸다. 사다리를 놓고 나무에 올라가 1년에 한 번 전지를 해 준다. 그러던 중 소나무의 천적 솔잎혹파리라는 병충해를 만났다. 나무줄기를 타고 들어가 솔 잎 안에 기생하며 자양분을 빼앗기 때문에 솔잎을 시들게 하고 끝내는 소나무 전부를 말려 죽인다. 재춘이 아재는 근심어린 눈으로 소나무를 바라보며 말한다. “병든나무를 보면 앓는소리가 들리는것 같아무슨 방비책이 없을까?”, 아버지는 구제방법으로 소나무 둘레에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농약(테믹)을 넣어 자양분 속에 용해 된 테믹으로 솔잎혹파리를 완전히 쫓아냈다. 누런빛을 떨치고 건강을 되찾아주는 나무의사가 되어 주었다.

 

아재의 눈가와 입가엔 연륜의 무게가 만든 잔주름이 패여 있다안정된 미소 속에 젊음을 능가하는 총명함과 자애로움이 멋스러웠.

 

76세에 취미 생활로 서예를 시작했다. 나이가 많아 어색해서 계속 공부를 해야 하나 망설였단다.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에 포기하지 않고 연습을 부지런히 하였다. 출품한 결과 입상이 되어 지금은 서예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품(西品)에서는 추수정신을 실감케, 전신의 힘을 붓끝에 모아 움직이게 한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나이 팔십을 넘기고 나니, 시간의 속도는 나이를 먹는만큼 빠르다고 재치있게 말씀하신다. 어릴 적에는 시간이 너무나 느리게 간다는 생각이 들어서 학년이 시작되는 봄에는 빨리 여름이 오지 않는다고 발을 구르곤 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바다의 썰물처럼 쏜살같이 지나간다고 한다.

 

재춘이아재는 말했다.

시간을 천천히 가게 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이든 배우고 익히는 것이지.”

 

그러다 보면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세월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나 보다. 그래야만 인생의 참맛도 느낄 수 있으니까. 은 늙어가더라도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으면서 젊게 살아가는 방법이지 싶다.

 

서실에는 공부하던 책자, 각종 체본 그리고 상패와 정년 퇴임할 때 수상한 훈장이 벽에 빽빽이 걸려 있었다. 서예를 시작 할 때부터 현재까지 연습지를 한 장도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각종체본도 전부 비치해 놓았다. 붓을 다룬다거나 서예 도구를 관리하고 정리정돈 할 때도 손이나 옷에 먹물을 묻히거나 흘리지 않도록 하다 보니 세심한 주의력도 길러진단다. 먹의 아릿한 내음이 서실 가득히 베어 있다.

 

붓글씨를 쓰다 보면 고심했던 속앓이가 고스란히 표현될 때가 있그럴땐 위안의 글로 가슴을 씻어 것처럼 시원함을 느끼지!”

 

 

박현선 수필가

▲ 박현선 수필가     ©CR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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