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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으로 돌아오는 고려인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이인화 | 기사입력 2023/04/03 [19:15]

고국으로 돌아오는 고려인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이인화 | 입력 : 2023/04/03 [19:15]

▲ 제천 의병모습 (1907년 매킨지 촬영)./출처=제천의병전시관캡처사진  

 

민족적 비극의 상징이었던 고려인이 돌아오고 있다. 80여 년 전 일제강점기, 민족의 이산(離散)으로, 그리고 강제이주로 고통받던 고려인들이 조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고려인은 1860년대 초부터 국내 정치·경제 상황이 어려워 연해주로 이주한 동포들이다. 1905년 을사늑약, 러일 전쟁 패전, 그리고 1910년 경술국치로 국권을 되찾고자 연해주로 이주해 조국 독립운동의 기지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간직한 채 타국에 나가 살아온 동포였다. 그들은 조국의 국권을 회복하고자 국외에서 삶을 바쳐 싸워온 우리 민족의 후손들이다.

 

최근 정부는 재외동포법 시행령 개정안(2019)을 통해 고려인에 대한 한시적 구제 조치로 비자 발급 기간을 연장하고 고려인 재외동포 범위를 3세대에서 4세대 이후까지 확대하였다. 2022년부터는 국내 초··고에 다니고 있는 미성년 동포 자녀들에게 재외동포자격을 부여하여 안정적인 체류와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해 국내에서 학업을 마칠 때까지 그들의 부모도 체류할 수 있게 하였다.

 

민족 정체성은 집단의 유전적 형질, 공통의 언어, 문화 및 역사, 세대간 전수되는 특정한 상징, 그리고 공통의 뿌리에 대한 신화 및 믿음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이런 정체성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같은 민족으로 동일한 혈통을 지니고 정체성을 지켜가고자 하는 노력의 소산이다.

 

연해주에서 19379월부터 12월까지 18만명의 고려인들이 강제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우주베키스탄으로 이주해 러시아식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으로 살면서도 김치 등의 한국식 음식문화와 돌잡이, 명절 등 한국식 전통을 지켜왔다.

 

하지만 구소련의 정책에 의해 모국어를 배울 수 없어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렵고, 상이한 문화와 생활환경으로 실제적으로는 외국인·이방인이 되었다. 우리는 그들의 다양한 정체성과 어울림의 양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를 진짜한국 사람, ‘진짜러시아 사람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러시아와 한국 두 나라에서 생활해보고 사람들과도 만나봤지만 어디서도 자신은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과 같이 러시아에서 태어난 한국 사람, 고려인들과 있을 때 자신은 진짜가 된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한국인 친구들과 어울리지만 그건 학교에 있을 때뿐이고, 쉬는 시간과 방과후 고려인 4·5세대에 해당하는 고려인들은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언어, 본국 및 한국에서의 차별 경험, 정서적 지지가 되어주는 사회적 관계 등의 요인에 따라 다양한 정체성이 형성될 것이다.

 

그들은 부모로부터 고려인임을 들어 알고는 있겠지만, 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사는 곳에서 경험에 의해 고려인의 의미를 재구성하거나 자기를 인식할 것이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부모에게 제대로 된 설명도 듣지 못한 채 한국으로 이주를 하였고 소통에 필요한 기본적인 한국어조차 익히지 못한 채 한국학교에 들어와 학교 및 부모로부터 빠른 적응에 대한 압박을 받으며 준비되지 않은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본국과 다른 교육과정과 학제,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아이들은 정서적 지지가 되어주는 가족·또래 관계 및 차별적 경험 여부에 의해 자신을 완전한 외국인으로도 여기고, 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고려인으로도 여기며, 혹은 한국과 잘 맞는 한국인으로도 인식할 것이다. 또한 한국어 사용이 능숙해지고 동시에 가정언어로 러시아어를 사용해 두 개 언어가 모두 유창할 경우 양국과 모두 접점을 가진 고려인으로 여기기도 할 것이다.

 

고려인 아동 중, 초기 적응과정에서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모두 유창하게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들의 이주 배경과 다층적 정체성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고려인 아동이 형성하는 관계망은 이주 초기 적응과 정보 공유, 정서적 안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현재 국내로 이주하는 고려인의 수는 증가하고 있다. 법무부는 2022년부터 고려인 아동의 교육권 및 안정적 체류 보장을 위하여 이들에게 재외동포 체류자격을 부여하였다. 이로 인해 이전과 달리 안정적인 국내 거주가 가능해짐에 따라, 공교육 안으로 들어오는 고려인 아동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재중동포, 북한이탈주민, 국제결혼가정 자녀에 이어 고려인 아동도 다문화 사회의 일원으로, 혹은 주체로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국내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고려인 아동의 정체성은 다문화 교육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먼저는 고려인 아동의 다양하고 개별적인 정체성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우리가 고려인으로 규정짓는 고려인 아동은 다양하고 개별적인 형태로 자기 인식을 하게 하여야 한다. 동포에 대한 환대의 의미로 고려인을 대상화하는 것은 일견 존중을 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종속적 지위를 강제하여 소수자에 머물러 있게 할 수 있다.

 

둘째, 고려인과 그들의 이주 배경에 대한 학교 구성원들의 이해가 필요하다. 안산, 광주, 아산 등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고려인 아동의 학교 취학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려인 아동의 한국어 교육과 한국생활 적응을 위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고, 고려인 아동과 그들의 이주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상황이다.

 

실제 일부 교사들은 고려인을 외국인이라고만 알고 있기도 하고, 곧 자기 나라로 돌아가 버릴 사람들로 인식해 신경 써줄 필요가 없다고도 생각한다.

 

학생들 역시 고려인 아동에게 한국어나 적응에 필요한 도움을 주는 일에는 적극적이지만, 반대로 고려인 아동을 통해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소홀한다. 친구들이나 교사들을 포함한 주변인들의 인식이 소수자들(고려인)의 문화나 특성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경우, 소외계층의 형성, 양극화 심화, 인종집단의 형성, 인종 갈등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점차 공교육 내 비중이 늘어나는 고려인 아동에 대한 학교 구성원들의 이해 교육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중층적 정체성을 지닌 고려인 아동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이러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가 마련되어야 한다. 고려인 아동은 한국과 본국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하며, 이것이 아동의 자존감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더불어 이들의 초국적 이주는 타인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가 아닌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포용적인 관점을 갖도록 하며,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고려인 아동은 이주 초기 도움을 받는존재에서 도움을 주고자하는 존재로 자기를 정립하고, 사회주의 문화와 자본주의 문화에 익숙하며, 다중정체성과 이중언어능력을 지니고 있어 두 개의 문화 사이에서 연결자역할을 할 수 있다.

 

다문화 교육에서 고려인 아동들의 이러한 위치를 생각해본다면 그들은 기존 사회가 갖지 못한 가능성의 주체로 인정되며, 적절한 기회 제공을 통해 이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고 우리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고려인은 자신의 삶을 개척해온 코리안 디아스포라다. ‘외국인 자녀또는 중도입국자녀가 아닌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그들의 귀환이 단지 취업을 위해 이주한다는 의미를 넘어 그들의 삶과 애환을 보듬고 동포라는 동질성을 회복해 우리나라 미래를 함께할 동반자로 그들의 존재가치를 생각해 본다.

 

원래 디아스포라 개념은 유대인과 같이 강제로 이주당해서 타지에서 압박을 받으며 모국에 대한 끊임없는 향수를 갖는 민족집단을 가리킨다.

 

이인화 (합도다문화정책학교 교감, 지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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