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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선 에세이 [꿈꾸는 여자들]~어머니 가슴에 조국을 묻다

박현선 | 기사입력 2023/05/01 [18:49]
제2부 고즈넉이 쌓여있는 그리움

9.어머니 가슴에 조국을 묻다

박현선 에세이 [꿈꾸는 여자들]~어머니 가슴에 조국을 묻다

제2부 고즈넉이 쌓여있는 그리움

9.어머니 가슴에 조국을 묻다

박현선 | 입력 : 2023/05/01 [18:49]

 

드라이브를 즐기며 남산타워나 팔각정을 다녀온 기억은 있으나, 남산 도서관 뒤에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처음 둘러본다. 기념관 주변에는 대그룹 회장들이 헌납한 자연석에 안중근 의사의 친필 글귀를 새긴 기념비들이 우뚝 서서 기념관을 바라보고 있다.

 

글을 쓰고 있어서인지 번쩍눈에 들어오는 글귀가 보인다. 재일동포 김용출 님이 헌납한 반들반들 윤기 나는 기념비이다. 일일부독서(一日不讀書), 구중생형극(口中生刑棘)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는 말이다.

 

독서 권장을 표현한 글귀에 나도 매일 글을 쓰지 않으면 손에 가시가 박히진 않을까(?) 인용해 보니 교훈이 되네!’ 안 의사님의 서체를 유심히 들여다보니, 마음이 바르면 글씨도 바르다고 곧은 성품이 엿보인다. 매일 책을 보며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며 이궁리,저궁리 애태우며 밤을 지새우는 안의사님 모습이 기념비안에 겹쳐 보인다.

 

실내 전시실은 안중근 의사의 유년 시절부터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전시물로 이루어졌다. 특히 역사의 슬픔이 맺혀 있는 뤼순감옥에 투옥 생활 중 친필 작품을 남겼는데 현재 밝혀진 것만도 57이 확인되었다. 하얼빈 의거 전후에 쓴 몇 가지 진귀한 필적도 전시 되어 있었다. 각별한 것은 참배 홀에 전시된 혈서로 된 태극기이다

 

1909년 초, 피폐한 볼모지 엔치아 카리 마을에서 붉은 혈기로 뭉친동지 12인이 태극기를 펼쳐 놓고, 각자 왼손 무명지 첫 관절을 잘흐르는피를모아 대한독립(大韓獨立)이라 쓴 안 의사의 필적이.

 

보물로 지정된 유묵에는 조국을 지키기 위한 굳은 결의에 찬 마음을 표현하여 휘호 낙관 부분에는 경술3, 혹은 2, 뤼순옥중,대한국인 안중근이라 서명하고 반드시 단지동맹 시, 무명지를 자른 왼쪽 손바닥이 찍혀 있다.

 

아픔을 고통이라 말할 수 없는 시대에 광복의 선구자가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굳은 혈맹은 내게 목이 타들어가는 갈증을 느끼게 하며, 시대, 독립의 외침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 숙연해진다.

 

거실에 필사된 백세청풍(白世淸風)세에 거쳐부는 맑은바람이란 유묵 작품이 걸려 있다. 어릴 적, 활쏘기와 사냥을 좋아했 던 안 의사가 진정한 영웅을 꿈꿨던 옛 기억을 그리워하며 정의로운 세상이 실현되길 바라는 염원이 담겨 보인다.

 

안 의사는 뤼순 감옥에서 조금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결연한 마음으로 암울해가는 세태를 걱정해 가며, 옥중 심경이나 애국 열정을 담은 글귀를 화선지에 쓰며 고통스러운 감옥 생활을 이겨내었.

 

먹의 맑은 향기로 흩어졌던 조국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을 다듬어 글을 썼을 것이며, 글귀는 정신의 안식처가 되었을 것이다.

 

의사는 32세의  젊은 나이에 사형을 받게 되었다어머니인 마리아여사는 심장떨리는 사형선고를 듣고아들에게 이런말을 전했다고 한다.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죽는것이 어미에대한 효도이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 세포가 절여지는 슬픔을 감추고, 먼저 삶을 마감하는 아들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사형집행 전날조마리아여사는 수의로 흰색 명주한복을 지어 보냈다.

 

어쩌면 훗날천국으로 훨훨 날아오른 아들을 만나길 염원하며물의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의사는 국내외 동포들에게 소중한 생명을 잔인한 형벌로 마감해야 하는 이유가 또렷이 기록된 () 섞인 유언의 글을 남겼다.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삼 년 동안을 해외에서 풍찬 노숙하다가 마침내 목적에 도달치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 이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여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주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유한(遺恨)이 없겠노라.”

 

자신을 하얼빈 공원 옆에 묻어 두었다가 해방이 되면 고국으로 보내 달라고 하였으나, 묘지가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우려한 일경시청이 비밀리에 어딘가에 암매장하였다니.

슬픔을 담은 역사의 진실이다. 아직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안중근 의사 서거 어느새 112년이 되었다. 거친 세상에서 독립을 외치다 까맣게 사라진 목소리는 태산처럼 당당하고, 그 기상은 하늘을 뚫을 듯한 의인(義人)의 역사가 되었다.

 

아직도 천국을 맴돌며그가 이루지 못한 동양평화의 정착을 빌대한민국의 안녕과 평안을 간절히 바라고 있진 않을까?

 

어디선가, 안중근 의사의 음성이 뇌리를 타고 흐른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다짐했던 마음인데 어찌 멈추랴!”

 

박현선 작가

▲ 박현선 수필가     ©CR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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