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24) 한국불교와 영산회상

보검 이치란 스님 | 기사입력 2023/06/12 [07:59]
법통과 깨달음의 상징에 너무 집착, 현실참여불교로 전환해야

종횡무진 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24) 한국불교와 영산회상

법통과 깨달음의 상징에 너무 집착, 현실참여불교로 전환해야

보검 이치란 스님 | 입력 : 2023/06/12 [07:59]

불교 26백년사에서 세계불교를 관망해보면,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석가세존이 입멸(入滅 BC 483)하고 100년쯤 지나면서 부처님과 직접 관련된 승가(僧伽, 공동체)의 모습은 상당한 변화와 진보적인 방향전환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 감지는 제2 경전결집에서 엿볼 수 있다.

 

▲ 인도 라지기르 영취산정 독수리봉 그르다라쿠타. 부처님 재세시에 거처했던 영산회상.  © CRS NEWS

 

2경전결집은 바이샬리란 곳에서 개최됐다. 바이샬리는 일찍이 상업도시로 발전되었다. 부처님도 바이샬리에 자주 들러서 머물렀다. 부처님의 바이샬리 이야기는 불경이나 불전문학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바이샬리는 석존과 인연이 깊은 지역이며, 처음 출가한 이래 찾아간 곳이 바이샬리였다. 석존이 깨달음을 이루고 승단을 구성했을 때도 바이샬리 승단은 주요한 그룹을 형성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불교승단 조직은 바이샬리의 민주주의적 방식을 채택한 것 만 봐도 바이샬리와 긴밀한 관련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으며, 불교 교단을 의미하는 '상가'(僧伽)라는 단어는 원래 이 지역에서 발생한 상공업자들의 동업조합(길드)이나 공화제를 의미하는 단어였다. 그 조직을 불교 교단 측이 채용하면서 이름 역시 상가(僧伽)에서 따온 것이었다. 어쩌면 바이샬리 승단이 석존 승단의 정통성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 부처님 사리탑과 아소카 석주.  © CRS NEWS

 

2 경전결집에서는 10() 비법(非法)이 이슈였다. 기원전 300년경쯤 개최된 것으로 연구되고 있는데, 열 가지 사항에 대한 계율 조목 상의 잘못된 일 때문이었다. 부처님이 생존했을 때의 계율 조목을 시대에 맞게 변경하여 완화하거나 진보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에 보수 장로파에서 완강하게 반대하면서 거부했던 사건이다. 지금의 시각에서 본다면 부처님 당시의 승가와 현재의 승가와 비교한다면 거의 100%가 달라져 버렸다고 해야 하겠다.

 

21세기 현 시대와 비교해 보면 너무나 경미한 하찮은 사건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큰 사건일 수 도 있다.

 

전통적으로 중국에 전해진 불교 율장은 네 가지 정도가 있었는데, 상좌부 빨리 율장, 십송율(十誦律), 사분율(四分律)》、《오분율(五分律)이 그렇다. 기록상으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제2 경전결집에서 논의된 이슈는 다음과 같다.

 

염정(鹽淨): 원칙적으로 출가 비구는 음식을 저장할 수 없는데, 바이샬리 승단 비구들은 소금을 음식물로서 보관했다가 먹는 것을 합법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지정(二指淨): 비구는 정오까지 식사를 끝내야 하는데, 바이샬리 비구들은 태양의 그림자가 정오에서 두 손가락 길이 정도를 지날 때쯤까지는 식사는 허용된다고 주장하면서 먹었다.

취락간정(聚落間淨): 한번 탁발을 해서 식사를 한 후에도 오전 중이라면 다른 마을에 가서 탁발 할 수 있다고 했다. 

 

▲ 한국불자들이 영산회상에 모여서 법회를 열고 있다.  © CRS NEWS

 

주처정(住處淨): 한 곳에서 포살(한 달에 두 번 계율 조목을 외우면서 참회 고백하는 행위) 을 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도 포살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의정(隨意淨): 원칙적으로 상가의 일을 논의할 땐 전원 참석이 요구되는데 모든 비구가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떤 사항을 결정한 후에 나중에 다른 비구들이 왔을 때 결정된 사실을 알리고 허가를 받아도 정법이다는 비민주적 결정이다.

상법정(常法淨): 스승의 시대부터 관습적으로 행해온 것을 자신이 행하는 것도 합법적이며, 출가하기 이전에 행하던 것을 출가이후에도 행하는 것은 합법적이라고 주장했다.

생화합정(生和合淨): 정오 이후엔 물이나 과즙과 같은 액상음료 외에는 먹는 것이 금지 되어 있었는데 바이샬리 비구들은 오후에 석밀(石蜜) 등을 섞은 우유를 정오 이후에 마시는 것도 합법적이라고 봤다.

음루가주정(飮樓伽酒淨): 아직 발효되지 않은 술을 마시는 것은 합법적이라고 주장하였다.

좌구정(坐具淨): 좌구를 만들 때 규정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취향대로 만들어도 무방하다.

금은정(金銀淨): 금은이나 돈을 소유하거나 저축하여도 합법적이다.

 

이상의 열 가지 논점을 열거한 것은 단순히 불교 계율의 변화에 대한 쟁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석가세존께서 열반에 든 다음 100년 정도 지나서 불교 승단에는 엄청난 이념적 갈등과 충돌이 발생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승단에는 보수파와 진보파간의 내적 충돌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말하자면 보수 장로파와 진보 개혁파 간의 분열이다. 그것은 스타비라파와 마하상기카파이다. 스타비라 니키야(The Sthavira nikāya)‘Sect of the Elders’ 즉 상좌부(上座部)란 의미이다. 말하자면 보수 장로파라고 할 수 있다. 이 스타비라파의 전통은 남방불교인 스리랑카 동남아시아의 상좌부 불교승가로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마하상기카(The Mahāsāṃghika)‘the Great Sangha’란 뜻으로 대중부(大衆部)를 말한다. 

 

▲ 한국의 불자들이 부처님께서 기거했던 영산회상에서 절을 하고 있다.  © CRS NEWS

 

말하자면 석가세존께서 열반에 든 다음, 100년 정도 지나면서 승가에는 분열이 일어났는데 이것은 보수 대 진보파 사이의 견해 차이였던 것이다. 남방 상좌부는 외형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비교적 붓다 당시의 승가 모습과 계율을 가능한 한, 어느 정도 잘 계승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여기서 길게 논의할 필요성이 없을 것 같다.

 

▲ 대중부의 근거지로 알려진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 주 카를리 동굴사원 법당.  © CRS NEWS

  

그러나 진보 개혁파라고 할 수 있는 대중부는 어떻게 변천해 왔는가?”라고 했을 때, 한번 논의해 볼만한 이슈라고 생각한다. 또한 동아시아 불교에서 법통의 원점이라고 여기는 영산회상과 관련해서 대중부를 해부하면서 과연 한국불교는 영산회상에 맥을 대고 언제까지 이런 법통과 깨달음의 상징으로 일관할 것인가?” 이다. 석가세존께서 가섭존자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 열반묘심(涅槃妙心)을 전한 곳이 바로 영산회상이라고 동아시아 불교에서는 선언하고,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금과옥조로 주창하고 있다. 한국불교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검<세계불교네트워크코리아대표>

▲ 필자 보검스님이 영산회상에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설명하고 있다.  © CRS NEWS

  • 도배방지 이미지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