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소풍길 단상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아기들이 들어서면 젖 냄새가 향기롭다. 기저귀 똥 냄새 까지 정겹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뿜어내는 숨과 땀 냄새에서도 사람의 향기가 느껴진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엘리베이터를 함께 탄 노파의 말에서도 나와 같은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앞으로 헤쳐나갈 아이들의 삶을 상상하면 아득하긴 하지만 이렇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을 수가 없네요. 우리처럼 산전수전 험한 삶 살지말고 지금의 천진난만한 모습 이어가면 좋겠는데...”
삶에 찌든 누추한 노파지만 잠깐 스쳐가는 환한 표정에서 구수한 마음의 향내가 난다.
아내는 내 방 한구석, 자신이 그려놓은 화사한 그림 앞에 디퓨저를 설치해 놓았다. 손주들이 찾아올 때 칙칙한 노인 모습과 냄새는 손주들에게 좋지 않다고 했다. 젊을 때는 양치와 샤워만 해도 되지만 나이 들면 피부가 탄력을 잃어 모공과 땀샘의 구멍이 커지고 노폐물들이 그곳으로 배출돼 노인냄새가 난다고 한다. 당사자는 못 맡지만 애들은 민감하다고 했다. 아닌게아니라 내 어린 시절 맡았던 노인들의 칙칙한 냄새가 기억이 난다.
어린이들한테서는 순수한 사람의 향기가 나고, 아이들 미래를 걱정하는 노파와 손주들 기분을 배려하는 아내한테서는 삶의 향기를 보게 된다.
CRS 매일종교신문에 ‘일상에서 찾는 삶의 구원과 행복’이란 칼럼을 연재하는 박길수 씨(72)는 뇌출혈로 쓰러져 8년동안 식물상태인 아내를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장애인 활동보조를 하며 간병하고 있다. 보통사람으로선 환자의 암울한 냄새가 연상되지만 그는 “이제야 사랑하는 내 아내를 꼭 껴안고 잘 수 있게 되었다”며 행복과 구원을 이야기 한다. 그는 프로필 사진까지도 산소호흡기를 끼고 삶을 연명하는 아내와 얼굴를 맞댄 모습을 사용한다. 타인에겐 거부감까지 들 수 있는 있는 사진을 당당하게 보여준다.
그는 50년 가까이 고락을 함께한 아내에게서 환자의 냄새가 아닌 사람의 향기를 흠씬 맡고 있다. 그리고 그에게선 장애인을 정성껏 돌보고 아내를 극진히 사랑하는 삶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그를 보며 나도 디퓨저의 향기로 노인 냄새를 벗어나는 것보다 은은한 삶의 향기를 지니고 싶어진다. 내 사랑하는 사람의 노인 냄새, 주검의 냄새도 삶의 향기로 느끼고 싶다. 병과 죽음을 낙엽 썩어가는 향기같은 삶의 향기로 받아들이고 싶다. 그러면 노인과 주검의 칙칙하고 부패한 냄새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사라진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삶의 의미와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깊은 유대로 빚어진 사랑과 관용, 배려와 포용에서 사람의 향기, 삶의 향기를 찾을 수 있다.
진화인류학, 심리학, 신경과학자인 ‘브라이언 헤어’의 ‘다정한 것이 살아 남는다(Survival of the Friendliest)’란 책이 있다. 이 책은 지금의 인간, 호모 사피언스가 ‘약육강식’, ‘적자생존’‘각자도생’의 진화 과정을 거쳤다는 기존의 진화론을 벗어나 ‘다정함’의 본성을 진화시켜 살아남았으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고도의 문명을 이루었다고 주장한다. ‘Friendliest’를 ‘다정함’으로 번역했으나 그 뜻은 ‘사랑’ ‘관용’ ‘배려’ ‘유대’ ‘포용’ ‘친화’ 등을 포함한 것 같다.
2022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언론들은 그의‘Friendliest’를 민주주의 정치와 접맥시켰으나 철학자로서의 그는 정치를 뛰어넘는 다양한 사회와 삶의 의미와 목적을 말해주고 있다.
그는 각종 서평에서 거론하는 ‘Friendliest’만을 강조하는 게 아니다. 특히 ‘Friendliest’에서 유발되는 ‘분노와 폭력’의 성향도 이야기하는 게 내 눈엔 더 인상적이었다. 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이 분비되면 자기 짝이나 자기 편에 다정함을 드러내는 한편 그 상대편엔 잔인한 비인간화 행태가 증폭된다는 것이다. 홀로코스트에서 유대인에게 보여주는 잔인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 드러내는 비인간화 표출과 적대감을 들 수 있다. 끼리끼리는 ‘Friendliest’가 강한 만큼 적대세력엔 비인간적 편견도 깊어진다는 것이다.
‘Friendliest’와 ‘분노와 폭력’이 같은 뿌리인 ‘사람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듯 하다.
아닌게아니라 지금 세상을 보아도 ‘Friendliest’와 ‘분노와 폭력’이 공존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남한과 북한이 자기네들끼리의 다정함으로 상대를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한다. 한국 내 진영과 정당도 꼭 같은 모양새다, 심지어 함께 생활하는 사회와 조직 내에서도 자신과 다른 것에는 혐오와 역겨움을 진저리 쳐치도록 표출한다. 내 안에도 그런 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게 보면 세상에 선악은 없다. 자기편엔 다정함의 ‘선’을 발휘하는 사람이 상대편엔 비인간적 ‘악’을 드러낼 뿐이다.
한편 ‘브라이언 헤어’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나치와 유대가 조금이라도 유대관계를 갖게되면 비인간적 적대감은 사라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친화를 통해 사랑과 관용, 배려와 포용정신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사람과 개를 비교하는 것은 비약이겠지만 포악스런 개, 말 잘듣는 개, 잘 생긴 개, 못 생긴 개를 놓고 평가할 게 못된다. 개 주인에게는 다 정답고 귀엽다. 내가 14년 키웠던 강아지 ‘가람이’가 죽었을 때 주검의 악취는 개의치 않고 하룻밤을 내 옆에 두고 잤다. 주위 사람은 병들어 추한 강아지로 보았지만 나에겐 아름다운 추억의 향기와 헤어지는 아쉬움이 컸다. ‘브라이언 헤어’도 늑대 가운데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친화력과 다정함을 발휘한 개가 진화해 번성했다고 했다.
개한테도 이럴진데 수백만년 함께 진화해온 사람들한테도 같은 생각을 품어야하지 않겠는가. 나쁜 사람, 포악한 사람, 못생긴 사람, 비안간적인 사람도 그들 세계에선 나름대로 ‘Friendliest’를 간직하고 있다. 내 손주나 아이들, 좋아하는 친구, 사랑하는 사람, 선호하는 집단에 뿜어내는 사랑의 호르몬 만큼은 못하지만 그들도 ‘사랑의 호르몬’을 간직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선 내가 사적으로 역겨워하는 주변 인물에 대한 인식부터 변화시켜 점점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인간의 향기, 사람의 향기, 삶의 향기는 더욱 짙어질 것이다.
꽃의 향기는 백 리를 가고(花香百里), 술의 향기는 천 리를 가지만(花香百里), 사람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人香萬里)는 것을 믿자. 어느 누구나 어느 누구한테는 ‘人香萬里’를 느끼게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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