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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祭天儀禮서 유래한 설과 그 상징

이광열 기자 | 기사입력 2014/01/28 [09:14]
“조상에게 禮 올리며 새롭게 시작하자”

고대 祭天儀禮서 유래한 설과 그 상징

“조상에게 禮 올리며 새롭게 시작하자”

이광열 기자 | 입력 : 2014/01/28 [09:14]
▲ 새해에는 복조리 장수에게 조리를 사서 벽이나 문 위에 걸어 두었다. 복을 사는 것이라 하여 값을 깎거나 물리지 않는 것이 상례였다.     ©

어원으로 보는 설날의 의미


설은 고대 제천의례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사서(史書)에 신라인들이 원일(元日)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군신을 모아 잔치를 베풀고, 일월신을 배례한다고 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백제 고이왕 5년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어 설날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또한 고려시대에 설, 정월보름, 삼짇날, 팔관회, 한식, 단오, 추석, 중구, 동지를 9대 명절로 삼았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설, 한식, 단오, 추석이 4대 명절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설을 연수(年首)·세수(歲首)·원단(元旦)이라고 하고, ‘삼가다’는 뜻의 ‘신’자를 써서 신일(愼日)이라고 하는데 모두 새해 첫날을 뜻하는 한자어다.

반면 ‘설’은 순우리말로 ‘익숙하지 못하다’, ‘낯설다’는 뜻의 ‘설다’에서 비롯됐다고도 하고, 나이를 뜻하는 ‘살’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한편 설을 ‘달도일’이라 쓰기도 하는데, ‘달도’는 ‘슬프고 애달파 서럽다’는 의미가 있어 이 ‘서럽다’에서 설이 되었다는 등 여러 의견이 있다.

이러한 어원설을 종합해 볼 때 설은, 묵은해의 모든 일을 잊어버리고 새롭게 한 해가 시작된다는 의미가 있으며, 몸과 마음을 삼가고 바른가짐으로 맞이해야 하는 의미를 지닌 날이다.


茶禮, 세배, 설빔, 복조리의 상징

설날 아침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조상들에게 드리는 차례(茶禮)다. 차례는 간략한 제사를 뜻하는데 ‘차(茶)를 올리는 예’라는 뜻에서 ‘차례(茶禮)’라 했다.
설 차례는 설날 아침 조상에게 올리는 세배의 의미도 있다. 차례상을 차리는 방법은 가가례(家家禮)라 하여 지방이나 가문에 따라 다르다. 설에는 밥 대신 떡국을 제수로 올린다.

세배는 설날 아침 차례가 끝난 후에 웃어른에게 절을 올리는 새해 첫인사이다. 세배하면서 덕담(德談)을 나누게 되는데, 옛날에는 세뱃돈 대신에 덕담을 주고받았다. 덕담은 주로 과거형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면 “올해 아들을 낳았다지”, “시험에 합격했다면서”와 같이 과거형의 말을 통해 소망하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했다.

설날 아침에는 새 옷으로 갈아입는데, 이 옷을 설빔이라 한다. 설빔은 나이와 처지에 맞게 마련했다.

형편이 좋으면 옷 일습(한 벌)을 장만했지만 그렇지 못하면 버선이라도 마련했다. 설빔에는 묵은해의 일들은 떨쳐버리고 일 년 동안 좋은 일만 생기기를 바라는 기원과 마음을 담았다.

새해의 복을 담는 징표가 복조리다. 조리는 쌀로 밥을 지을 때 모래와 잔돌을 걸러내는 도구다. 요즈음에는 드물지만, 예전에는 설날 새벽에 복조리를 팔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복조리 장수에게 조리를 사서 벽이나 문 위에 걸어 두었다. 이러한 풍속은 먹을 쌀이 없어서 굶는 때가 많았던 시절, 설날에 산 복조리로 일 년 내내 쌀을 일 수 있고 한 해 동안 먹을 식량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 달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복조리는 일찍 살수록 길하다고 여겨 새벽에 대문에 던져놓기도 했다. 그리고 복을 사는 것이라 하여 값을 깎거나 물리지 않는 것이 상례였다.
 
▲ 차례상은 가풍이나 지역 특색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     ©
 
차례음식의 의미와 상차리는 방법


제사음식은 지방과 가문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각 음식은 모두 상징성이 있다. 대추는 한 나무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열매가 열리기 때문에 자손의 번창을 상징하고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밤은 다른 식물과 달리 싹이 돋고 떡잎이 나온 후에도 최초의 씨앗이 사라지지 않고 땅속에서 생밤인 채로 달려있기 때문에 자손과 조상을 연결하는 영원한 상징으로 여긴다.


감나무는 감씨를 심기만 해서는 열리지 않고, 3~4년쯤 된 어린 감나무(고욤나무)에 접을 붙여야 감이 열리는 것처럼 사람도 가르침을 받고 배워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고 하여 제수로 사용하고 있다.

차례상은 가풍이나 지역 특색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 
제상을 바라보아 오른쪽을 동, 왼쪽을 서로 한다. 진설의 순서는 시접(수저), 잔반(술잔, 메, 탕)을 신위 앞에 놓은 후 앞줄부터 차례로 놓아간다. 차례 상은 보통 5열로 놓는데, 각 열에 두어야 하는 음식들이 있어 따르도록 한다.

과일은 첫째 줄에 놓는다.
왼쪽부터 대추, 밤, 감(곶감), 배 순서로 놓는다. 배와 감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 것이 관례다. 한과나 약과는 오른쪽에 놓는다. 과일을 놓을 때 위아래를 깎아놓는데, 조상들이 드시기 좋게 다듬어 놓는다는 의미가 있다.

반찬은 둘째 줄에 놓는다.
포와 나물, 식혜 등을 놓는다. 왼쪽에 북어포 또는 대구포를 두고, 오른쪽 끝에 식혜를 진설한다. 중간에는 나물을 홀수로 둔다. 김치도 희게 담근 나박김치를 올린다. 깨끗하고 순수하게 담근 음식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셋째 줄에는 탕을 놓는다.
육탕, 소탕(두부 탕), 어탕의 순서로 3탕을 진설한다. 건더기만 떠서 조상이 드시기 좋게 올린다.

넷째 줄에는 적과 전을 놓는다. 
육적, 소적, 어적의 순서로 올린다. 어류는 동쪽에 육류는 서쪽에 두되 생선 머리는 동쪽으로 향한다. 동쪽은 소생을 뜻하여 머리를 동쪽에 두고, 해가지는 서쪽은 소멸을 상징하여 꼬리가 향하도록 한다.

다섯째 줄에는 밥과 국을 놓는다. 
지방 앞 왼쪽에는 밥(메)을 오른쪽에는 갱(국)을 놓고 왼쪽에 면류, 오른쪽에 떡을 놓는다. 우리가 밥과 국을 놓는 반대 방향이다. 밥이 서쪽 국이 동쪽이다.

꽁치, 갈치, 삼치 등 ‘치’자가 든 생선은 하급 생선으로 분리되어 차례 상에 쓰지 않는다. 잉어나 붕어처럼 두꺼운 비늘이 있는 생선도 같다. 고춧가루, 마늘 양념, 붉은 팥은 귀신을 쫓는다고 알려져 올려놓지 않는다. (국립민속박물관 자료, 가정의례규칙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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