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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덕목

이옥용 발행인 | 기사입력 2014/12/21 [20:44]
좋은 종교용어와 종교심은 모든 종교와 만인의 덕목이다

종교의 덕목

좋은 종교용어와 종교심은 모든 종교와 만인의 덕목이다

이옥용 발행인 | 입력 : 2014/12/21 [20:44]

◈ 저희 신문사로 각 교단의 항의성 전화나 편지가 자주 옵니다. 이미 법원 판결 등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실도 신문에 게재하면 명예훼손이라며 정정과 반론보도를 요구합니다. 신앙의 잣대로 보는 것과 사회적 잣대로 보는 것과의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되도록 전자의 견해를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느 종교든 뭔가 깊은 뜻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간혹 우격다짐으로 협박성 압박을 가하는 교단도 있습니다. 종교심보다는 폭력조직의 공동체의식을 보는 것 같아 불편합니다.
 
◈ 얼마 전에는 ‘자기 교단에서만 사용하는 용어를 화평서신에 인용하여 불편하다’는 항의전화가 왔습니다. 마치 이슬람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말레이 언어로 하나님을 뜻하는 ‘알라’를 다른 종교에서는 쓰지 말라는 것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부르지 않고 뭐라고 하란 말입니까. 각 종교마다에는 깊은 뜻이 담긴 좋은 용어들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죽음을 표현하는 선종, 열반, 입적, 승천, 승화, 성화 등 얼마나 거룩한 용어들입니까. 좋은 용어들은 오히려 확산시켜 그 의미를 사회에 심어주는 게 종교의 역할이라고도 봅니다.
 
◈ 통일, 평화, 사랑은 모두 종교적 덕목입니다. 그래서 종교들은 비록 다른 용어일지라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를 주창해왔습니다. 그러나 통일을 주창하는 데는 통일이 없고, 평화를 강조하는 데는 평화가 없고, 사랑을 말하는 데는 사랑이 없습니다. 결국 통일이 안되어 통일을 주창하고, 평화가 없어서 평화를 강조하며, 사랑이 없어서 사랑을 찾는 것을 반복하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왜 인류역사 이래 절대적으로 추구해온 종교적 덕목들이 구심점을 못 찾고 헤매고 있는 것일까요.
 
◈ 통일, 평화, 사랑 등 종교적 덕목들이 자기 집단, 자기 교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한다는 집단 이기주의 때문이라고 봅니다. 자신들이 신봉하는 말씀과 용어, 그리고 신앙으로써 규합되어야 진정한 정의라는 아집이 오히려 갈등과 불의를 키운다고 봅니다. 다름을 조화로 보지않고 한 색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신념 때문에 다툼이 생겨납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이슬람국가와 탈레반의 테러를 비롯해 도처의 종교와 민족분쟁들이 모두 이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 자기 교단의 용어와 말씀, 신념을 벗어나 종교심의 본질을 보는 혜안이 절실합니다. 2000년전 로마의 영웅 카이사르는 “그 어떤 사람도 현실에 나타나는 모든 것을 전부 보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부분만 보게 된다”고 했습니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많은 개인과 집단이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보고 싶는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 같습니다. 종교학의 창시자 막스뮐러는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편향된 교리를 무조건 믿으면 경신(輕信), 맹신(盲信), 광신(狂信), 미신(迷信)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저 역시 수십년 전 공부를 한다고 미아리촌 점집, 무당집, 삼각산, 기도원, 중국 진시왕이 참배했던 태산의 사당 등을 다녀 보았고, 150만 원 짜리 굿도 해 보았습니다. 이 역시 조상의 천도, 극락, 구원 등 내 나름의 편향된 종교적 집착이었다고 봅니다. 이러한 종교적 집착으로 인해 특정 종교지도자들의 구호나 선동에 쉽게 빠져들기도 합니다. 다행이 이제는 미디어의 발전, 특히 정보기술의 발달로 종교가 절대 소수의 전유물이 되지 않는 것이 다행입니다. 종교나 종교지도자가 상식 밖의 행동을 하게 되면 세상이 그냥 두고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염려하는 종교이지만 종교에 희망이 있습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쿼바디스’가 그 한 사례입니다. 우리나라 대형 개신교회의 문제점을 하나씩 들춰냈는데 그 틀 안에 있으면 자칫 맹신에 묻혀 못 볼 수 있는 것들을 짚어내고 종교와 교회의 갈 길을 일깨워 줍니다. 틀 안에 사로잡혀 있으면 배임 사건, 성추행 의혹, 돈과 권력지향, 부동산 투기, 세습 등 종교 안의 세속과 고질병을 볼 수가 없습니다.
 
◈ 모름지기 종교는 각 종교의 덕목을 인정하고 공부하며 공유해야지 자기 방식만 집착하고 타 종교의 방식을 배타시하면 오히려 세상의 근심거리가 될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자기 종교의 혁신 없이는 어느 종교나 부패해온 역사를 되풀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독실한 이슬람 교인인 이란 변호사 시린 에바디는 근래 이슬람국가(IS)의 테러와 인질사건에 대해 "이슬람 근본주의를 뿌리 뽑으려면 그들에게 폭탄을 던지는 대신 책을 던져주고 학교를 세워주자"고 제안했습니다. 폭력근절을 위해 폭력과 전쟁으로 대응하려는 여론에 ‘핍박과 차별’보다는 넓은 교육을 시키자는 진정한 종교심의 발로였습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은 “부모와 형제, 이웃은 모두 부처와 같이 대하며 우리 주변의 아픔과 고통을 보듬어 내 자신을 예수로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부처님의 대자대비,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정신을 강조하며 종교적 덕목을 공유했습니다. 좋은 종교용어와 종교심은 모든 종교와 만인의 덕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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