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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구호 왜 확산되는가

이중목 기자 | 기사입력 2015/01/16 [10:47]
‘강자·우월의식의 일방적 표현’ 반성, "표현의 자유도 한계"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구호 왜 확산되는가

‘강자·우월의식의 일방적 표현’ 반성, "표현의 자유도 한계"

이중목 기자 | 입력 : 2015/01/16 [10:47]


“내가 샤를리다"(Je suis Charlie)라는 구호에 이어 타 종교를 모욕하는 자유까지는 허용할 수 없다는 뜻을 담은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Je ne suis pas Charlie)라는 구호가 확산되고 있다. (사진)
 
지난 7일 ‘샤를리 엡도’의 테러사건 이후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내가 샤를리다"가 동의어가 돼 버린 ‘강자·우월의식의 일방적 표현’이란 반성이 생기고 ‘표현의 자유에도 한계가 있다’는 의식이 일고 있는 것이다.
 
평소 발행부수보다 50배나 많은 300만부를 발행한 '샤를리 엡도'의 생존자 특별호에 '내가 샤를리다'라는 글이 적힌 종이를 든 무함마드를 표지에 게재하자 오히려 반작용이 생겨나고 있다. 판매부수 확장에는 기여했지만 표현의 자유와 동의어가 되버린 매체의 이미지는 훼손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샤를리 엡도가 지난 2008년 유대인을 풍자한 만평가를 해고조치한 전력도 드러났다. 샤를리 에브도의 중견 만평 작가 모리스 시네트(85·필명 시네)는 2008년 7월 2일자에 칼럼을 하나 썼다가 2주 뒤 해고됐다. 칼럼 내용에서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니콜라 사르코지의 아들이 유대인 재벌 총수 딸과 결혼한다는 소식에 대해 '이놈 크게 성공하겠네'라면서 비꼰 부분이 문제가 됐던 것이다.
 
보수 학계와 정계에선 "시네의 칼럼이 유대인을 재력이나 정치적 권력과 연관이 있다는 그릇된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어 반(反)유대주의적이다"고 주장했다. 압박을 받은 필립 발 당시 샤를리 에브도 편집장은 시네에게 사르코지 아들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고, 응하지 않자 그를 해고했다.
 
스웨덴 국영 TV에 따르면 시네는 미국 소재 극우 유대교 단체 '유대교 보호 연맹'으로부터 살해 위협도 받았다. 진보 진영은 샤를리 엡도가 '유대인 로비'에 굴복당했다며 시네를 옹호했으나, 해고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만평 작가들은 "유럽과 미국 등 서방은 유대인 문제만 나오면 한없이 약해지며 원칙을 잃어버린다"고 비판했다. 특히 브라질 출신 작가 카를로스 라투프는 만평을 통해, 서방이 무함마드를 풍자하는 작가는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우대해주는 반면, 유대인을 풍자하는 작가는 '반유대주의·인종차별' 논리를 적용해 처벌한다고 꼬집었다.
 
지난 14일 프랑스 경찰이 이날 페이스북에 “나는 오늘 밤 샤를리 쿨리발리 같아요”라는 글을 남긴 코미디언 디외도네 음발라를 테러선동 혐의로 기소한 것도 표현의 자유에 관한 이중잣대를 지적받고 있다. “무책임하고 무례하고 증오와 분열을 부추기는 발언”이라며 음발라와 비슷한 이유로 조사받거나 기소된 사람은 50여명에 이른다. 이에 르몽드지는 “샤를리 엡도는 다시 종교 만평을 싣는데 왜 음발라는 공격받아야 하나”라며 비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결정적인 발언을 해 세계인의 공감을 사고 있다.
 
교황은 15일 스리랑카 방한을 마치고 필리핀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샤를리 엡도와 테러와 관련해 “신의 이름으로 사람을 살해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각 종교는 존엄성을 지니고 있고 표현의 자유에도 제한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신념을 모욕하고 도발할 수 없다. 이를 조롱할 수도 없다”며 “표현의 자유는 권리이고 의무이지만 남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고 행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파리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2학년 학생은 르몽드와 인터뷰에서 "나는 이슬람교도가 아니라 '내가 샤를리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학교의 이슬람 친구들은 이를 모욕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슬람 친구들이 테러로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들은 '내가 아흐메드다'고 말하고 싶어하며 나는 그들을 이해한다"고 호소했다. 아흐메드 메라베는 샤를리 엡도 테러범 쿠아치 형제에게 살해된 경찰관으로 이슬람교도였다.
 
페이스북에는 "내가 샤를리다"는 주장에 대항해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라는 구호가 퍼져 나가고 있다.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샤를리 엡도가 상징하는 표현의 자유에도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테러로 목숨을 잃은 만화가들에 대한 증오 섞인 메시지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테러를 비난하지만 샤를리 엡도의 무한한 표현의 자유에도 찬성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샤를리 엡도의 창립 멤버도 테러로 사망한 이 잡지 편집장이 과도한 도발로 동료를 죽음으로 이끌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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