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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깨달음과 성숙한 종교

문윤홍 대기자 | 기사입력 2023/02/02 [11:54]
‘묻지마 신앙’은 위험…대화와 소통에 성숙한 종교 필요

영적 깨달음과 성숙한 종교

‘묻지마 신앙’은 위험…대화와 소통에 성숙한 종교 필요

문윤홍 대기자 | 입력 : 2023/02/02 [11:54]

▲ 수암(守岩) 문윤홍 大記者/칼럼니스트  

 

영국의 출판그룹 왓킨스(Watkins)에서는 2011년부터 매년 가장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 100을 발표하는데, 201130세 나이에 최연소 지도자로 선정된 제프 포스터(Jeff Poster)는 서구 영성계의 떠오른 샛별이다.

 

포스터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천체물리학을 공부했다. 한편으로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허무감에 빠져 있던 그는 20대 중반에 진지한 영적 구도자가 되었다.

 

이후 수많은 영적 서적을 탐독하고 다양한 수행법을 실천하며 구도(求道)의 길을 걸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세하게 남아 있던 가 완전히 사라졌고, 그는 어디에도 분리가 없음을, 오직 불가사의한 이것뿐임을, 평범한 삶이 바로 유일한 기적임을 깨닫게 되었고, 모든 것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으며, 마침내 그의 영적 추구도 끝이 났다.

 

포스터는 저서 경이로운 부재에서 단순하고 명료한 언어로 궁극의 진실과 영적 깨어남에 관해 얘기했다면, 가장 깊은 받아들임에선 참된 자기의 진실뿐 아니라 그 깨어남으로 지금 이 순간과 하나 되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어떤 힘겨운 경험을 하든, 세상에서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법을 알기 쉽게 자세히 얘기한다.

 

201912월 국내에 번역·출간된 가장 깊은 받아들임에서 영적 깨달음에 관한 부분 중 일부를 소개한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이 두려워하는 경험을 영적 깨달음이 모두 없애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깨달음이 어떤 특별한 상태나 경험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깨달으면 두려움도 없고, 아픔도 없고, 슬픔도 없고, 화도 없고, 부정적인 것이 하나도 없는 자리라고 오해합니다.

 

다시 말해, 깨달음이란 모든 나쁜 물결이 없어진, 완벽하게 고요하고 통제되는 바다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또한 어둠이 없는 빛이며, 다양성이 없는 하나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런 관점은 추구자가 바라는 갈망의 표현에 불과합니다. 추구자는 삶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키고 싶어 합니다. 추구자는 죽음으로부터 보호받기를, 현재의 경험에 있는 물결을 완전히 통제하고 싶어 합니다.

 

많은 사람이 깨달음이 완벽한 바다일 것으로 상상합니다. 부정적인 물결, 나쁜 물결, 위험한 물결이 하나도 없는 바다. 그들이 상상하는 깨달음은 더없이 행복한 구루입니다. 아픔과 슬픔, 지루함, 좌절, 두려움, 또는 어떤 식의 약함도 전혀 느끼지 않는, 완벽하게 행복한 상태에서 살아가는 구루. 그 깨달음은 아픔과 고통을 주는 상대적 세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이원성의 세계로부터의 도피입니다. 그것은 궁극의 보호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런 종류의 깨달음은 가능하지 않음을 봅니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우리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인지에 관한 이원적 개념에 바탕을 둔 거짓말. 그것은 추구자의 꿈에 지나지 않습니다. 불행히도, 또는 크게 보면 아마 다행히도, 그런 꿈에 영합하는 영적 가르침이 많습니다. 그런 꿈은 인기가 좋습니다. 추구자가 가장 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편안함, 확실함, 안전함.”

 

영적 깨달음을 추구하는 순례자에게 배우는 신앙의 자세

 

영성(靈性)에 관한 서적 대부분은 영성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얻게 되는지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그러나 『이름 없는 순례자』는 영성에 관해 설명하기보다 순례자의 행동을 통해 영성이 무엇인지를 직접적으로 보여 준다.

 

이 책은 러시아의 알려지지 않은 저자가 영적 아버지께 드리는 순례자의 진솔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19세기 말에 펴냈다. 가톨릭출판사에서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였던 최익철 신부(2020822월 향년 98세로 선종)1979년 번역한 이 책의 전반부를 이름 없는 순례자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이후 이 책은 40년 이상 많은 이들의 영성에 깊은 영향을 주는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순례자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며, 구체적인 상황에서 하느님과의 깊은 관계를 바랄 때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또 그로 인해 어떤 행복을 느낄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이름 없는 순례자의 주인공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순례자이기에 당장 먹을 것도, 쉴 곳도 없지만 세상에 아무런 미련이나 욕심을 두지 않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걱정도 없이 살아간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 동안 오직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1테살(살전) 5:17)라는 바오로 사도(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따르며 기도에만 전념할 뿐이다.

 

그러는 동안 어느덧 기도를 통해 순례자의 온 마음과 정신이 하느님으로 가득차게 된다. 그가 겪는 이러한 변화는 우리에게 때로는 놀라움으로, 때로는 기쁨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영성이 자라는 데 가장 중요한 바탕은 기도라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사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이 책의 순례자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향한 길을 걷는 순례자라 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순례자의 모습은 우리가 지녀야 할 모습이기도 하다.

 

이름 없는 순례자의 주인공인 순례자는 마음과 정신을 예수님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는 법을 알고자 노력한다. 그는 이를 위해 영성가들을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예수 기도를 배우게 되었고, 노력 끝에 다른 것에 마음을 뺏기지 않고 오로지 예수 성심만을 기도에 담아내기에 이르렀다.

 

비로소 그는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더욱 깊은 영성을 갖는 결실을 맺게 된다.

예수 기도는 언제 어디서나 끊임없이 할 수 있어서 기도를 생활화하기에 좋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도 더욱 깊어지도록 이끌어 준다. 항상 아빠, 엄마하며 자신을 부르는 자녀에게 부모의 사랑이 더 깊어지듯이,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반복해서 부를 때 우리의 마음은 주님을 향하게 되고, 그분도 우리를 더욱 큰 사랑으로 보살펴 주실 것이다.

 

특히 이 책은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신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하고, 그분을 닮고자 노력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21세기 종교 정신은 결국 깨달음

 

기독교 근본주의를 비판하며 개혁을 꿈꾸는 젊은 목사의 외침을 다룬 장편소설 예수의 할아버지의 최원영 작가가 이번에는 예수님의 폭소를 냈다.

 

다섯 편의 단편 모음집으로 구성된 이 책의 제목을 유머러스하게 정하게 된 이유는 뭘까. 그는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기독교를 향해 질문과 대답을 자유롭게 던지기 위해서다. 그래서 시간 제약 없이 베드로와 도마도 등장해 문답을 주고받는다. 종교 이야기다. 너무 심각하고 엄숙한 쪽보다 자연스럽고 유머가 있는 쪽을 택했다. 그걸 통해 사람들이 마음을 좀 더 열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책에서 그는 한국 교회의 묻지마 신앙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 최 작가는 “교회에서는 대개 묻지마 신앙이 훌륭한 신앙으로 생각된다. 저는 그게 답답했다. 한번 뿐인 우리의 삶에는 진정성이라는 게 있다.

 

종교(宗敎)()’자는 근원, 즉 뿌리를 뜻한다. 종교는 자기 삶의 뿌리와 연결돼 있다. 여기에 대해 묻지 말라고 하면 결국 해결이 되겠나. 그게 중세 때 종교와 무엇이 다르겠나. 종교에도 시대마다 시대정신이 있다고 설파했다.

 

그러면 현시대 종교의 시대정신은 뭔가. “기독교의 모태에 해당하는 유대교에는 원죄(原罪) 개념이 없다. 구약성경에도 원죄라는 용어는 없다. 원죄가 유전된다는 말도 없다. 기독교의 원죄 개념은 4세기 성 어거스틴(354~430)이 만들었다. 인류의 죄를 대신해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당했다는 대속(代贖)의 개념도 1세기에 사도 바울이 만들었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당시 시대적 필요성이 있었으리라 본다.

 

진리는 변함이 없지만, 지금의 시대정신은 또 다르다. 2021년 선종한 존 쉘비스퐁 주교(미국 성공회)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다,”

 

어떻게 변해야 하나. 그는 기독교가 처음 등장한 1~3세기는 신앙의 시대였다. 초기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느냐보다 예수의 가르침을 행하느냐를 중시했다.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됐다. 예수의 신성, 원죄, 삼위일체 등의 교리가 생겨났고, 정통과 이단을 구분하는 믿음의 시대가 열렸다.

 

4~20세기는 그런 믿음의 시대가 공고히 진행됐다. 지금은 21세기다. 이제는 새로운 깨달음의 시대가 열려야 한다. 소설에서도 그 이야기를 다루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깨달음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이미 정해진 답과 스스로 당연하게 여기는 믿음의 틀. 거기에는 깨달음이 없다.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도 그렇다. 거기에 담긴 뜻을 깨칠 때, 비로소 우리의 신앙도 철이 든다. 깨달음을 통할 때 성숙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예수님의 폭소에 담겨 있는 마지막 단편 끝장토론: 하나님은 있는가?’가 눈길을 끈다. 과학자와 신학자가 TV프로에 나와서 김동근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하는 뜨거운 논쟁이다. 유신론이냐, 무신론이냐의 기계적이고 이분법적인 논쟁이 아니다.

 

소설 속 신학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저는 하나님을 어떤 특정한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실재적이라고 믿는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하나님을 독특한 방식으로 인류에 나타내셨다. 동시에 저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셨다는 성경 말씀을 진리로 믿는다.”

 

반면 과학자는 이렇게 지적한다. “보험을 들듯이 하나님 믿고 교회 나가는 사람들도 많다. 삶의 목표는 오직 세상에서 잘 되고, 죽어서는 천당 가는 것이다. 이 땅에 널려 있는 밑져야 본전 교회순보험 교회를 다니면서 귀중한 삶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종교는 진지하고 심각하게 인생을 걸어야 하는 결단이다. 자기 삶의 진정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끝장토론에서는 시종일관 종교에 대한 성숙함을 강조한다. 최 작가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묻지마 신앙과 문자주의에 갇혀 신()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진다면 대화와 상생(相生)이 어렵다.

 

반면 종교를 바라보는 성숙함이 있으면 달라진다. 성숙한 유신론자와 성숙한 무신론자는 서로 대화와 소통, 그리고 상생이 가능하다. 한국 사회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종교에 대한 성숙한 태도라고 본다. 소설을 통해 그런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다.”

 

영성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영성 시대에는 영적 깨달음에 달한 사람들이 많아진다. 그렇게 되면 종교도 새로워지고 성숙해야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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